선연한 여름의 기억, 성률 기획전 〈여름을 닮은 우리〉

에르메스·유니클로·백예린이 선택한 작가, 성률

성률의 첫 대규모 기획전 〈여름을 닮은 우리〉가 그라운드시소 한남에서 열리고 있다. 원화와 드로잉, 영상 등 140여 점의 작품을 통해 작가가 오랫동안 그려온 여름의 풍경과 성장의 기억을 조망하는 전시다.

선연한 여름의 기억, 성률 기획전 〈여름을 닮은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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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 Summer Vacation ⓒGROUNDSEESAW ⓒSEONGRYUL

누구에게나 여름은 있다. 모든 것을 녹일 듯 내리쬐는 햇볕, 귀가 아릴 정도로 울어대는 매미, 혀끝에 닿던 자두의 싸한 단맛. 저마다의 기억은 다르지만 여름이라는 계절의 푸름이 청춘의 반짝임과 닮아 있다는 데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골목 끝에 서 있는 두 아이, 그 너머로 솟아오른 새하얀 뭉게구름. 햇볕에 달궈진 아파트 단지와 물결 위로 부서지는 빛. 성률의 그림 속 풍경은 특별할 것 없는 일상처럼 보이지만 묘한 잔상을 남긴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뛰놀던 골목, 방과 후 돌아오던 길, 무심코 올려다본 어느 여름날의 하늘. 이미 사라졌거나 언젠가 사라질 풍경들이 그의 그림 안에서 다시 살아나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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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닮은 우리〉 전시 전경 ⓒGROUNDSEESAW

작가의 그림을 원화로 직접 마주할 자리가 마련됐다. 성률의 첫 대규모 기획전 〈여름을 닮은 우리〉가 그라운드시소 한남에서 열리고 있다. 원화와 드로잉, 영상 등 140여 점의 작품을 통해 작가가 오랫동안 그려온 여름의 풍경과 성장의 기억을 조망하는 전시다.

사라질 풍경을 기록하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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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예린 EP 앨범 〈선물〉의 앨범 아트워크 전반에 참여했다.

성률은 맑고 투명한 색채와 섬세한 묘사로 풍경 속 작지만 따스한 이야기를 전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애니메이션과 졸업 작품으로 제작한 그래픽노블 〈여름 안에서〉로 2022년 일본국제만화상 최우수상을 받았다. 한국인 최초의 수상이었다. 이후 백예린과 이하이의 앨범 아트워크를 비롯해 유니클로, 에르메스, 네이버 등과 협업하며 활동 영역을 넓혀 왔다. 만화와 일러스트레이션, 애니메이션을 넘나드는 작업 방식으로 상업과 예술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오가며 두터운 팬층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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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 Incense ⓒGROUNDSEESAW ⓒSEONGRYUL

성률의 그림에는 오래된 아파트 단지와 골목, 학교 담장, 호수와 나무 그늘 같은 장소가 자주 등장한다. 작가는 언젠가 사라질 공간에 마음이 끌린다고 말한다. 개발로 모습이 바뀌거나 시간 속에서 희미해지는 장소들. 그곳은 단지 배경이 아니라 누군가의 기억이 머무는 공간이다.

그림 속에는 늘 십 대 무렵의 소년과 소녀가 등장한다. 어디론가 향하거나, 잠시 멈춰 서 있거나, 하늘을 올려다보는 인물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존재들이다. 성률은 이들을 통해 성장의 한가운데를 통과하는 시간을 그린다. 뜨겁고 눈부시지만 동시에 불안하고 흔들리는 계절. 성률의 작품 속 여름은 그저 계절 풍경이 아닌, 유년에서 청춘으로 건너가는 과정 자체를 의미한다.

다섯 개의 여름을 지나는 전시

작가에게 여름은 뜨거운 성장통을 겪으며 자라나던 유년의 감각과 닮아 있다. 불안하고 혼란스러웠던 마음은 작품 곳곳에서 여름날의 열기와 일렁이는 그늘로 스며든다. 전시는 성률이 애정 어린 시선으로 포착해 온 여름의 조각들을 한데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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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Bridge ⓒGROUNDSEESAW ⓒSEONGRYUL

전시는 다섯 개의 챕터로 이어진다. 첫 번째 존 ‘여름을 닮은 우리’는 수채 원화 대표작을 중심으로 구성했다. 군더더기를 덜어낸 공간 안에서 관객은 작가 특유의 색감과 붓 터치에 집중하게 된다. 여름 햇살과 짙은 녹음, 그 안에 자리한 인물들이 전시의 첫 장면을 연다. 이어지는 ‘초록의 숨결’에서는 이끼 낀 숲과 고요한 호수, 서늘한 뒷골목을 담은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녹음을 재현한 공간 연출이 더해져 잠시 숲속 그늘 아래 머무는 듯한 감각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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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닮은 우리〉 전시 전경 ⓒGROUNDSEES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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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Water ⓒGROUNDSEESAW ⓒSEONGRYUL

세 번째 존 ‘부서지는 빛’은 물결 위로 흩어지는 햇빛과 나무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여름의 찰나를 다룬다. 그림자 연출을 통해 작품 속 빛의 움직임을 공간 전체로 확장하며 몰입감을 높였다. 네 번째 존 ‘못다 한 이야기’에서는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롭게 제작한 드로잉 50점과 애니메이션을 선보인다. 한편에는 작가의 인터뷰와 작업 과정도 함께 공개된다. 완성된 작품 뒤에 놓인 작가의 생각과 감정을 보다 가까이 들여다볼 수 있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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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풍경 Salad Days (Acrylic) ⓒGROUNDSEESAW ⓒSEONGRYUL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존 ‘구름 너머로’다. 50호 이상의 대형 캔버스에 그린 구름 연작이 관객을 맞이한다. 캔버스 너머로 확장되는 영상 매핑 연출은 실제 하늘 아래 서 있는 듯한 개방감을 만든다. 성률의 작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구름은 이곳에서 성장과 변화, 앞으로 흘러갈 시간을 상징하는 존재로 다가온다. 거대한 구름 아래 서 있으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어린 시절의 여름은 이미 지나갔지만, 우리는 여전히 각자의 계절을 살아가고 있구나. 다시 찾아온 이 계절, 우리는 그 사이 얼마나 자랐을까.

여름을 지나온 우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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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닮은 우리〉 전시 전경 ⓒGROUNDSEES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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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Still Walking ⓒGROUNDSEESAW ⓒSEONGRYUL

전시의 흐름은 재회, 회상, 성장으로 이어지는 감정선을 따른다. 어린 시절의 나와 친구들, 익숙했던 골목과 다시 마주하고, 여름의 다양한 감각 속으로 깊이 들어간다. 이윽고 수많은 여름을 지나온 지금의 나와 만나는 여정이다. 전시 말미에서는 겨울을 담은 원화와 관객 참여형 콘텐츠가 기다린다. 성률의 작업에서 겨울은 여름의 반대편에 놓인 계절이 아니다. 수많은 계절을 지나 도착한 또 다른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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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 Holidays ⓒGROUNDSEESAW ⓒSEONGRYUL

성률의 그림 앞에 서면 누구에게나 잊지 못할 여름 하나쯤은 떠오른다. 열다섯 살의 여름, 스물의 여름, 그리고 지금의 여름. 이미 지나가 버린 계절일지라도 그때의 공기와 온도,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각자의 기억 속 여름과 다시 마주하게 하는 전시 〈여름을 닮은 우리〉. 전시는 9월 27일까지 그라운드시소 한남에서 이어진다.

성률 기획전 〈여름을 닮은 우리〉

기간 2026년 4월 30일 – 9월 27일
주소 그라운드시소 한남 (서울시 용산구 한남대로91)
운영 시간 10:00 – 19:00
웹사이트 groundseesaw.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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