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DF 2026 영 디자이너 멘토 ③ 이광호 작가
이광호를 설명하는 가장 정확한 수식은 ‘만드는 사람’일 것이다. 손으로 재료를 다루고 구조를 실험하며 물성이 충돌하는 순간을 집요하게 관찰하는 그는 자신만의 견고한 조형 언어를 구축했다. 지난 20여 년간 국내외 컬렉터와 갤러리, 브랜드로부터 끊임없이 러브콜을 받으며 무한한 스펙트럼으로 자신의 세계를 확장해 온 이광호를 올해 영 디자이너 멘토로 초대했다.


이광호는 만드는 사람이다. 디자이너이자 아티스트로 꾸준히 작업하게 만드는 동력은 무엇인가?
창작 활동에 관심이 많고 그 활동이 곧 나의 직업이다. 이를 디자이너나 아티스트라는 직함으로 규정하지 않으려 한다. 나는 전문적인 제품을 만드는 산업 디자이너가 아니고, 내 작업을 특정 단어로 설명하기도 쉽지 않다. 사실 전공은 금속공예인데, 학교에 입학하기 바로 전에 학과 명칭이 금속조형디자인으로 바뀌었다. 디자인이 명시되어 있기는 하지만 우리 과는 전문적인 디자인 과정을 가르치는 곳은 아니었다. 실제로 나는 컴퓨터 툴을 전혀 다루지 못한다. 여전히 손으로 스케치하고 직접 내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손으로 만들었다고 공예일까? 아니면 가구를 만들었기 때문에 디자이너일까? 갤러리에서 전시를 하고 작품 활동을 하니까 작가일까? 그 어떤 수식어보다 나는 이광호가 가장 먼저 이야기되고, 이광호가 만든 무엇이기를 바란다. 내 작업은 결과가 아니라 항상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특별한 동력이 있다기보다는 다른 이들처럼 여러 직업 중 하나를 택했고 열심히 하려고 할 뿐이다.
일상에서 흔히 보이는 전선이나 호스, 나일론 등을 꼬아 만드는 매듭 작업으로 독특한 미학을 구축했다. 어떤 계기로 시작했나?
어린 시절부터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대학교 조명 디자인 수업 시간에 전선을 꼬아 형태를 만든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계속 작업하고 있다. 처음에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활용했다. 비용을 포함해 여러 가지를 고려했을 때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일부 작업에서 칠보, 옻칠 등을 접목하긴 했지만 전통 기법의 명맥을 이어가거나 한국 전통을 새롭게 구현하는 것에 큰 뜻이 있진 않다. 흔히 말하는 ‘전통 재료’에서 ‘전통’이라는 단어만 빠져도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내가 다루는 재료가 결국 나 자신을 닮아가는지 끊임없이 들여다본다. 재료를 통해 나를 설명하고, 또 나를 통해 재료의 새로운 가능성과 의미를 발견해 가는 과정이야말로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포트폴리오를 보면 폭넓은 소재를 아우른다. 소재의 가능성은 어떻게 찾는 편인가?
내 작업은 모두 연작이다. 소재의 가능성은 한 번에 찾아지지 않는다. 한 가지 재료를 선택해 반복적으로 작업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재료와 동질감을 느끼고, 나 자신과 동기화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또 그 과정에서 새로운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 과정을 반복하면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재료와 교감하며 소재를 이해하고 그 안에 나를 투영시키려고 한다. 20여 년간 작업하고 있지만 여전히 만들어보지 못한 형태와 다루지 못한 재료가 너무 많다.

최근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보테가 베네타와 세 번째 협업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이번 작업에선 인트레치아토를 어떻게 해석했나?
보테가 베네타 산탄드레아(Sant’Andrea) 매장을 위한 조명 설치 작업 ‘라이트풀(Lightful)’은 공중에 매단 직조 형태의 구조물에 보테가 베네타의 가죽을 하나하나 엮어 완성한 빛 조형물이다. 직조된 요소들이 만들어내는 빛과 그림자의 효과를 통해 소재와 구성의 관계에 대한 탐구를 확장할 수 있었다. 이번 작업에선 인트레치아토의 행위 자체를 내 작업과 동일시했다. 단순 작업의 묘미라고 해야 할까. 그 모든 것을 단순 작업만으로 완성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변화를 만들고, 시간을 엮어가는 과정 말이다. 협업 과정에서 몬테벨로 비첸티노에 위치한 보테가 베네타의 아틀리에를 찾아가 장인들의 작업 방식을 지켜보기도 했다. 가죽을 하나하나 엮어내는 장인들의 집요함이 내 작업 방식과도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한국 디자인이 국제적인 흐름 속에서 주목받으면서 젊은 디자이너들이 이전보다 다양한 가능성을 상상하게 된 것 같다. 지금 영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태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영 디자이너의 활동 무대는 이미 글로벌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작업을 시작하던 때와 비교하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속도는 훨씬 빨라졌고, 마음만 먹으면 자신의 작업과 활동을 전 세계에 자신 있게 알릴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시대는 준비되어 있으니 결국 중요한 것은 꾸준히 좋은 작업을 이어가는 일 아닐까.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사물을 통해 이야기하고, 그것을 세상 안에 존재하게 만드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 역시 지금도 같은 마음으로 작업하고 있다. 단지 조금 먼저 시작했을 뿐이다. 하지만 먼저 시작했다는 것이 꼭 정답은 아니다. 결국 각자가 향하는 종착지는 모두 다를 것이고, 우리는 저마다의 신화를 만들 수도, 자신만의 역사를 써 내려갈 수도 있다.

최근 국내외 디자인 신에서 흥미롭게 본 작업이나 작가가 있나?
너무 많다. 사실 나는 디자인 신만 보지 않는다. 음악, 미술, 영화, 건축, 음식, 춤 등 다양한 분야의 창작자들을 보며 동료애를 느끼고 동기 부여를 얻는다.
작가로서 경계하는 태도가 있다면?
게으름.

올해 영 디자이너 멘토로 참여하는 소감은?
멘토로서 좋은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 역시 부족한 점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다만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며 좋은 관계를 만들어가기를 기대해본다. 2007년 서울디자인페스티벌에 첫 전시로 참여했지만, 당시에는 기대만큼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고민을 했지만, ‘조금만 더 해보자’는 마음으로 작업을 이어왔고 그 시간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멘토라고 해서 명쾌한 방향성을 제시할 수는 없겠지만, 내 이야기가 수많은 조언 가운데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는 이야기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