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하반기 주목할 해외 디자인 전시 5
일상의 공공성부터 생존의 문제까지
2026년 하반기 해외 뮤지엄은 디자인의 사회적 책무와 공공성 복원에 주목한다. 연대와 생존 등 삶을 지탱하는 본질적 역할을 질문하는 전시다. 시각 유산부터 자생적 생존법까지, 실천적 언어를 선보이는 해외 디자인 전시 5가지를 소개한다.

디자인은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자 공동체의 삶을 지탱하는 실천적인 언어이다. 최근 해외 주요 뮤지엄이 주목하는 전시는 단순한 미적 가공이나 상업적 효율을 넘어 일상의 공공성 복원, 사회적 연대, 그리고 지속 가능한 생존이라는 공통의 가치를 관통한다. 한 국가의 공공 인프라를 다져온 시각 유산부터 사물에 대한 돌봄의 태도, 일상 속 민주주의적 소통과 위기 상황 속 생존법까지, 이들이 선보이는 디자인은 모두 우리 삶의 토대를 지탱하는 사회적 책무와 직결되어 있다. 독창적인 시각 언어로 디자인의 본질적 역할을 질문하는 2026년 하반기 주요 해외 디자인 전시 다섯 가지를 소개한다.
콘트라푼크트가 정립한 시각 유산
장소 덴마크 디자인 뮤지엄
기간 2026년 6월 12일 ~ 10월 18일
지난 40년간 덴마크의 시각 문화를 다져온 디자인 에이전시 ‘콘트라푼크트(Kontrapunkt)’의 단독 전시가 덴마크 디자인 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다. 뮤지엄의 실험 전시 시리즈인 ‘라보라토리움(LABORATORIUM)’의 네 번째 프로젝트로, 디자인 페스티벌 〈3 Days of Design〉 기간에 맞춰 공개되었다.



(오른쪽) LABORATORIUM Kontrapunkt. 사진 Daniel Rasmussen
1985년 설립된 콘트라푼크트는 덴마크 국영 철도(DSB)의 육각형 로고, 약국 네트워크의 알파벳 ‘a’, 공영 방송사 ‘TV 2’의 원형 심볼 등을 탄생시키며 북유럽 디자인의 표준을 제시해 왔다. 이들이 정립한 시각 언어는 덴마크인들의 일상에 스며들어 국가의 공동 시각 문화를 형성하는 축이 되었다.


한편 이번 전시는 콘트라푼크트가 뮤지엄에서 선보이는 최초의 단독 전시라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브랜드 정체성이 단순한 장식이 아닌 기업과 기관의 본질을 증명하는 실체라는 철학을 집약한다. 전시장에서는 왕실, 정부 부처, 공공 인프라, 스포츠, 비즈니스를 아우르는 디자인 프로세스를 공개한다. 40년 아카이브에서 엄선한 5가지 케이스 스터디가 중심이다. 특히 150년 역사의 상징물, 르네상스 시대 약병 글꼴, 도시 사자상 등 문화 맥락과 유산을 재해석하며 시대를 초월하는 그래픽 언어를 구축해 온 과정을 보여준다.
사물에 깃든 돌봄과 색채의 미학, 헬라 융게리우스
장소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
기간 2026년 3월 14일 ~ 2026년 9월 6일
디자이너 헬라 융게리우스(Hella Jongerius)의 회고전 〈헬라 융게리우스: 속삭이는 사물들(Hella Jongerius: Whispering Things)〉이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30년간의 커리어를 아우르며 초기 실험작부터 뉴욕 현대미술관(MoMA) 소장품, 브랜드 협업 제품, 최근의 세라믹까지 400여 점의 작품과 아카이브 자료를 총망라한다. 2024년부터 뮤지엄이 소장해 온 작가의 아카이브를 바탕으로 기획되었다. 물건이 넘쳐나는 시대에 디자인이 가질 수 있는 비판적 역할이 무엇인지, 소비와 폐기 대신 존중과 돌봄의 가치를 어떻게 사물에 담아낼 수 있는지 질문을 던진다.

전시는 뮤지엄의 4개 갤러리를 활용해 네 가지 주제로 전개된다. 1990년대 네덜란드 아방가르드 그룹 ‘드로흐 디자인(Droog Design)’ 시절의 실험을 다룬 ‘더러운 손(Dirty Hands)’ 섹션은 공예와 산업 생산 사이에서 재료의 특성을 탐구한 초기작을 진열한다. 전시장 내 비디오 몽타주는 디자이너의 손작업 과정을 보여주며 아이디어의 물리적 구현 방식을 강조한다. 이어지는 ‘비즈니스 클래스(Business Class)’ 섹션은 비트라, 이케아, 캠퍼, KLM을 비롯해 나이키, 마하람 등 기업과의 협업 과정을 다룬다. 상업적 프레임워크 안에서 책임감과 재료의 진정성을 관철해 온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완제품뿐만 아니라 스케치, 프로토타입, 서신 등을 배치하여 협업의 이면과 프로세스의 흔적을 드러낸다.



‘느끼는 눈(Feeling Eye)’ 섹션은 약 300개의 컬러 꽃병(Coloured Vases)과 종이 컬러 캐처(Colour Catchers) 등으로 색상이 주변과 반응하는 현상임을 증명하며, 비평가 루이즈 스하우엔베르흐(Louise Schouwenberg)와의 대담 영상을 함께 상영한다. 마지막 ‘우주적 마음(Cosmic Mind)’ 섹션은 ‘스페이스 아뮬렛(Space Amulets)’과 키네틱 직물, 가구 등을 통해 이종(異種) 간의 공존과 사물의 주체성을 다룬다. 한편 본 전시는 폐막 후 함부르크 응용예술박물관(MK&G)으로 순회 예정이다.
일상과 제도를 혁신하는 도구, 민주주의를 위한 디자인
장소 프랑크푸르트 응용예술박물관
기간 2026년 5월 21일 ~ 8월 9일
‘세계 디자인 수도 2026’의 일환으로 기획된 〈민주주의를 위한 디자인: 디자인은 무엇을 이룰 수 있는가!〉전시가 프랑크푸르트 응용예술박물관에서 오는 8월 9일까지 진행 중이다. 안나 쇼이어만(Anna Scheuermann)과 마티아스 바그너 케이(Matthias Wagner K)가 큐레이션을 맡은 이번 전시는 디자인을 단순한 미적 가공이 아닌 삶을 개선하고 지속시키는 책임감 있는 변화 과정이자 도구로 정의한다. 공공장소, 스포츠 시설, 공원 등 일상 인프라의 설계가 사회 결속력과 공공 제도에 대한 신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다각도로 탐구한다.

전시장에는 프랑크푸르트 라인마인 지역의 사례와 유럽 각지의 프로젝트를 연결한 총 25개의 동시대 디자인 제안이 유기적인 동선으로 시각화되어 있다. 장애인의 주도적인 사회 참여를 돕기 위해 박물관 안내서와 웹사이트를 쉬운 언어(Leichte Sprache)로 번역·검증하는 서비스인 ‘pw° geprüft’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또한, 전통적인 정치 담론의 틀에서 벗어나 일상 공간 속에서 민주주의적 실천과 포용성을 모색하는 건축 프로세스 ‘임퍼펙트 어셈블리(Imperfect Assemblies)’도 긴밀하게 다룬다.


여기에 80% 이상의 재생 가능한 원료인 미국산 적참나무와 아마사 그물망을 활용해 지하 인프라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도심 속에 시원한 녹지 휴식처를 조성하는 런던의 가변 설치물 ‘버트(VERT)’ 등 기후 위기와 사회 변화에 대응하는 대안들이 함께 소개된다. 공동체와 지구의 지속 가능성을 중심에 둔 디자인이 어떻게 소비가 아닌 돌봄의 행위가 될 수 있는지도 목격할 수 있다.


나아가 전시는 행정 제도가 시민에게 주는 심리적 장벽을 낮추는 공공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에도 주목한다. 프랑크푸르트 관공서의 새로운 건축에 맞춰 전용 픽토그램 가문과 명확한 타이포그래피, 일관된 색상 시스템을 도입해 시민들의 정보 접근성과 신뢰도를 높인 ‘프랑크푸르트 질서국(Ordnungsamt Frankfurt)’의 유기적 길 찾기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자전거 주행 거리를 가치 있는 화폐나 지역 사회의 마일리지로 환산하여 탄소 중립과 커뮤니티 발전을 연계한 도이치반의 ‘DB 라드 플러스(DB Rad+)’ 앱 서비스 디자인 역시 공공의 행동 변화를 유도하는 디자인의 가능성을 말한다.
위기의 시대, 생존과 대비의 도구가 된 프레퍼 디자인
장소 뢰스카 뮤지엄
기간 2026년 2월 7일 ~ 10월 4일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이 일상화된 시대에 디자인이 어떻게 생존과 통제, 희망의 도구로 작동하는지 탐구하는 전시 〈우리는 생존할 것이다: 프레퍼 운동과 디자인(We Will Survive: The Prepper Movement and Design)〉이 스웨덴 예테보리의 뢰스카 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다. 최근 위기 대비와 가정 내 상시 준비 태세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과거 주류에서 벗어난 하위문화로 여겨졌던 ‘프레퍼(Prepper, 재난 대비형 인간)’ 문화가 공공의 영역으로 들어온 현상을 정조준한다.



이번 전시는 스위스 현대디자인응용예술박물관(mudac)이 연구·기획한 국제 순회전의 일환으로, 뢰스카 뮤지엄과의 협력을 통해 스웨덴 관객을 찾았다. 프레퍼 운동의 역사와 동시대적 현상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를 바탕으로 구성된 전시장에는 건축 모델, 잡지, 역사적 영상, 영화 및 비디오 게임의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면 등 200여 점의 디자인 사물이 진열되어 디자인이 어떻게 구체적인 생존 전략이 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특히 뢰스카 뮤지엄에서의 전시는 스웨덴의 민간방위청(MSB) 등에서 조달한 사물들을 추가하여 자국 맞춤형 시각을 더했다. 스웨덴 모든 가구에 배포되었던 안내 책자 <위기나 전쟁이 도래했을 때(In Case of Crisis or War)> 등 정부와 개인의 이중적 대비 방식을 조명하며 국가적 재난이나 전쟁 상황에서 필수 요소로 기능하는 디자인과 창의성의 역할을 재규정한다.
사회를 연결하는 그래픽, 엑스페리멘탈 젯셋의 회로들
장소 암스테르담 스테델릭 뮤지엄
기간 2025년 7월 12일 ~ 2026년 8월 2일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엑스페리멘탈 젯셋(Experimental Jetset)의 전시 〈엑스페리멘탈 젯셋: 회로들(Experimental Jetset: Circuits)〉이 스테델릭 뮤지엄에서 진행 중이다. 지난해 7월부터 이어온 이 전시는 오는 8월 2일 폐막을 앞두고 있다. 이번 전시는 정치와 일상의 경계에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시각화하는 시도이자, 사회적 연대라는 담론을 타이포그래피와 공간 설계의 관점에서 관통한다는 점에서 타이포그래피의 사회적 실천이나 디자인의 공공적 역할에 주목하는 이들이라면 놓쳐선 안 될 전시라 할 수 있다.


엑스페리멘탈 젯셋은 1997년 마리커 스톨크(Marieke Stolk), 에르윈 브린커스(Erwin Brinkers), 대니 판 덴 둥엔(Danny van den Dungen)이 암스테르담을 기반으로 설립한 그래픽 디자인 컬렉티브다. 이들은 자신들의 작업 방식을 ‘언어를 사물로 번역하는 과정’이라 정의하며 디자인과 언어, 정치, 문화사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는 개념적 접근을 취해왔다.

전시는 이들이 타이포그래피를 정보 전달 수단을 넘어 공공 공간에서 시민을 연결하고 사회적 목소리를 가시화하는 ‘회로(Circuits)’로 정의하는 방식에 주목한다. 전시장에는 네덜란드 포스트-펑크 하위문화 아카이브, 도시 인프라 시각 시스템, 소비주의에 저항하는 그래픽 제안들이 진열되어 있다. 디자인이 권력의 일방적 전달을 막고 일상 속 민주주의적 소통을 활성화하는 도구가 되는 과정이 중심을 이룬다. 관객은 인쇄 매체와 공간 그래픽을 마주하며, 텍스트와 실루엣이 어떻게 공동체의 연대를 다지고 인간적 가치를 복원하는 실천적 언어로 안착하는지 살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