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드 시드니를 밝힌 프랑스 멀티미디어 아티스트, 얀 응게마
자연과 알고리즘이 만나는 순간
과학, 음악,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바탕으로 자연 현상을 분석하고 이를 빛과 영상으로 재구성하는 아티스트 얀 응게마. 최근 세계 각국의 문화유산과 공공 건축물을 무대로 대규모 프로젝션 매핑 프로젝트를 선보이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디지털 기술은 이제 디자인과 예술의 중요한 언어가 되었다. 건축물 외벽에 영상을 투사하는 프로젝션 매핑부터 인공지능을 활용한 이미지 생성까지, 기술은 시각 표현의 영역을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프랑스 멀티미디어 아티스트 얀 응게마(Yann Nguema)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구축한 작가다. 그는 과학과 음악,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바탕으로 자연 현상을 분석하고 이를 빛과 영상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그의 작품에는 파도의 움직임, 식물의 성장, 지질학적 구조, 생명체의 순환과 같은 자연의 질서가 자주 등장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요소들이 디지털 기술을 통해 표현되면서도 차갑거나 기계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건축물과 도시 공간은 그의 작업을 통해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처럼 변화한다. 최근 세계 각국의 문화유산과 공공 건축물을 무대로 대규모 프로젝션 매핑 프로젝트를 선보이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는 그는 동시대 미디어 아트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프로그래머이자 음악가로 출발한 얀 응게마

얀 응게마의 이력은 일반적인 미디어 아티스트와는 조금 다르다. 그는 과학을 공부한 뒤 시각예술과 음악 분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특히 1990년대 프랑스의 실험적 음악 그룹인 ‘EZ3kiel’의 창립 멤버로 참여하며 음악과 영상, 무대 연출을 결합한 작업을 선보였다. 당시 그는 공연에 사용되는 비주얼 시스템과 인터랙티브 장치를 직접 개발했고 음악과 이미지가 실시간으로 반응하는 새로운 형태의 공연을 실험했다. 이후 이러한 경험은 오늘날 그의 대표 작업인 프로젝션 매핑으로 이어졌다.
응게마는 상용 프로그램에 의존하기보다 자신이 직접 코드를 작성해 이미지 생성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알고리즘과 수학적 계산을 활용해 복잡한 패턴과 움직임을 구현하며, 이를 건축물의 형태와 정교하게 결합한다. 그의 작업이 기술적 완성도와 예술적 서정성을 동시에 갖춘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비비드 시드니를 수놓은 오페라하우스 프로젝트 ‘Opera Mundi’

세계 최대 조명 축제인 비비드 시드니의 대표 프로그램인 ‘Lighting of the Sails’는 매년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의 돛 모양 지붕에 대형 프로젝션 작품을 선보인다. 올해 오페라하우스를 아름답게 수놓은 작품은 응게마가 제작한 ‘오페라 문디(Opera Mundi)’로, 자연의 순환과 변형을 주제로 삼은 것이다. 작품 속에는 파도와 구름, 암석의 성장 구조, 미세한 생물의 움직임을 떠올리게 하는 유기적 패턴이 등장한다. 특히 오페라하우스의 곡선형 지붕을 적극 활용해 이미지가 건축물 내부에서 생성되고 성장하는 것 같은 효과를 연출했다. 작품 제목인 오페라 문디는 ‘세계의 오페라’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육지와 바다, 하늘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의 리듬을 표현한다. 음악은 루마니아 출신 작곡가 미샤 블라노스(Mischa Blanos)가 맡아 영상과 긴밀하게 호흡하도록 구성됐다. 결과적으로 관람객은 건축과 영상, 음악이 결합한 하나의 거대한 공연을 경험할 수 있었다.
건축을 살아있는 유기체로 바꾸는 프로젝션 매핑
얀 응게마의 작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주제는 건축물에 움직임과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는 건물을 스크린으로 사용하지 않고 건축 자체가 숨 쉬고 성장하며 변화하는 존재처럼 보이도록 설계한다. 대표작인 ‘Caryatids’(2017)에서는 프라하의 성 루드밀라 교회 외벽을 무대로 삼았다. 수만 장의 벽돌이 안쪽에서부터 밀려 나오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장면을 구현해 석조 건물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착각을 만들었다. 또 다른 프로젝트에서는 건물 표면을 물결처럼 흔들리게 하거나 식물의 성장 과정을 연상시키는 패턴을 생성했다. 규칙적으로 증식하는 선과 점, 세포 분열을 떠올리게 하는 구조들은 마치 건축물 내부에 새로운 생명체가 탄생한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최근 비비드 시드니에서 선보인 ‘Opera Mundi’ 역시 같은 맥락에 있다. 오페라하우스의 지붕은 거대한 파도와 광물, 유기적 구조가 끊임없이 생성되고 변화하는 풍경으로 탈바꿈했다. 이러한 작업은 오늘날 미디어 아트가 디자인 매체로 활용되는 방식을 보여준다. 과거 건축 디자인이 재료와 형태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빛과 데이터, 알고리즘 역시 공간 경험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응게마는 건축의 물리적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이 공간을 인식하는 방식을 새롭게 설계한다. 그의 작품은 디지털 기술이 건축과 도시 공간에 어떤 새로운 서사를 부여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다.

오늘날 미디어 아트는 전시장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방식에 머무르지 않고 도시와 건축, 공공 공간을 새롭게 경험하게 만드는 디자인 매체로 발전하고 있다. 특히 프로젝션 매핑은 건축물의 물리적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서도 공간의 분위기와 의미를 재구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역사적 건축물은 새로운 서사를 담은 무대로 변하고, 익숙한 도시 풍경은 빛과 영상, 음향을 통해 전혀 다른 모습으로 인식된다.

얀 응게마의 작업은 이러한 가능성을 잘 보여준다. 그는 알고리즘과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건축과 자연, 사람 사이의 관계를 시각적으로 연결하며 공간에 새로운 감각적 경험을 부여한다. 앞으로의 디자인은 형태와 재료를 설계하는 것은 물론 빛과 데이터, 움직임까지 다루는 방향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크다. 미디어 아트는 그 변화의 최전선에서 도시와 건축을 위한 새로운 표현 언어를 만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