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부풀린 헤이그의 공공 디자인 실험, 블로업 주빌리

공기를 재료로 도시를 디자인하다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공공 공간의 디자인 가능성을 모색한 인플레이터블 아트 프로젝트 ‘블로업 주빌리’가 한 달간의 여정 끝에 막을 내렸다. 5주년을 기념해 지난 대표작들을 도시 곳곳에 다시 펼쳐 보인 이번 행사 리뷰를 소개한다.

도시를 부풀린 헤이그의 공공 디자인 실험, 블로업 주빌리

지난 5월 22일부터 6월 21일까지 네덜란드 헤이그는 거대한 공공 디자인 무대로 변신했다. 블로업 주빌리(BlowUp Jubilee)는 2022년 시작된 인플레이터블 아트 프로젝트 ‘블로업 아트(BlowUp Art)’의 5주년을 기념하는 특별 에디션으로, 지난 5년간 선보인 대표 작품들을 도시 곳곳에 다시 펼쳐 보였다. 그러나 이번 행사는 단순한 회고전이 아니었다. ‘블로업 주빌리’는 인플레이터블 아트의 실험을 되짚는 동시에 ‘공공 공간은 어떻게 디자인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도시 규모의 디자인 프로젝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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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업 주빌리(BlowUp Jubilee) 프로그램 전경 자료 제공 The Hague & Partners

도시를 전시장으로 바꾸는 가장 가벼운 재료

이번 전시의 주인공은 공기다. 인플레이터블 구조물은 그동안 이벤트 장치나 임시 설치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블로업 주빌리는 공기를 하나의 건축적 재료이자 공간 언어로 다뤘다. 거대한 풍선 조형물들은 랑허 포르하우트(Lange Voorhout), 호프베이버(Hofvijver), 중앙역과 쇼핑 아케이드 등 헤이그 도심 곳곳에 설치되며 도시의 풍경을 새롭게 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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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mbert Kamps, ‘Submarine’ 자료 제공 The Hague & Partn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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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ve Messan, ‘Tunnel‘ 자료 제공 The Hague & Partners

흥미로운 점은 작품 자체보다 작품이 만들어낸 새로운 도시 경험이다. 네덜란드의 행정 수도인 헤이그는 정부 기관과 역사적 건축물이 밀집한 도시다. 그 사이에 거대한 분홍색 파빌리온, 붉은 스파이크 구조물, 노란 링 형태의 조형물이 등장하면서 익숙한 도시의 위계가 흔들린다. 묵직한 석조 건축과 가볍고 유연한 공기 구조물이 대비를 이루며 예상치 못한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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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ve Messam, ‘Small’ 자료 제공 The Hague & Partners

도시 역사, 건축, 동선과 관계를 맺은 큐레이션

이번 전시가 성공적이었던 이유는 개별 작품의 완성도뿐 아니라 큐레이션에 있다. 큐레이터 메리 헤싱(Mary Hessing)은 네덜란드 디자인·라이프스타일 분야를 대표하는 저널리스트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 그는 지난 5년간 소개된 작품들을 다시 불러왔지만 단순히 재설치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각 작품이 도시의 역사와 건축, 동선과 관계를 맺도록 세심하게 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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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Körmeling, ‘The Ever-Beating Calendar’ 자료 제공 The Hague & Partners

대표적인 사례가 존 쾨르멜링(John Körmeling)의 ‘The Ever-Beating Calendar’다. 대부분의 관람객은 이를 노란 도넛이나 튜브 형태의 조형물로 인식하지만, 실제로는 19년 주기의 천문학적 순환을 시각화한 작품이다. 흥미로운 것은 개념보다 장소가 먼저 읽힌다는 점이다. 작품은 헤이그의 상징적인 호텔 데 인데스(Hotel Des Indes) 앞에 설치되어 기존 건축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마치 원래 그 자리에 존재했던 구조물처럼 보인다. 이처럼 ‘블로업 주빌리’는 작품을 감상하는 전시가 아니라 도시를 새롭게 읽게 만드는 전시였다.

디자인과 예술의 경계에서

참여 작가 명단을 보면 이번 프로젝트의 성격이 더욱 분명해진다. 마르셀 반더스(Marcel Wanders), 스튜디오 욥(Studio Job), 로우 컬러(Raw Color), 키키 앤 요스트(Kiki & Joost), 시그리드 칼론(Sigrid Calon) 등 현대미술가보다 디자이너의 비중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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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rianus Kundert, ‘My First Inflatable’ 자료 제공 The Hague & Partn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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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w Color, ‘Compressed Cylinders’ 자료 제공 The Hague & Partners

그 결과 많은 작품이 개념적 담론보다 시각적 경험과 공간 연출에 집중한다. 일부 현지 평론은 “시각적 효과는 뛰어나지만 개념적 깊이는 다소 약하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특성은 공공 디자인 프로젝트로서는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한다. 관람객은 별도의 설명 없이도 작품과 공간을 직관적으로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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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grid Calon, ‘Gazebo’ 자료 제공 The Hague & Partners

특히 시그리드 칼론(Sigrid Calon)의 ‘Gazebo’는 네덜란드 총리 집무실인 ‘토렌체(Torentje)’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작품이다. 정치권력의 상징을 분홍색 인플레이터블 파빌리온으로 재해석하며 공공성과 민주주의라는 주제를 가볍지만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헤이그가 얻은 전시 이상의 것

블로업 주빌리는 예술 프로젝트인 동시에 도시 브랜딩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헤이그의 상징적 공간인 비넨호프(Binnenhof)가 대규모 보수 공사로 장기간 폐쇄되면서 시는 ‘비넨호프 바이턴(BinnenhofBuiten)’ 프로그램을 통해 도심의 활력을 유지하고자 했다. ‘블로업 아트(BlowUp Art)’는 그 중심에 자리한 프로젝트로 성장했고, 이번 ‘주빌리(Jubilee)’ 에디션은 그 성과를 집약적으로 보여줬다. 특히 이번 행사는 무료 야외 전시라는 점은 의미가 크다. 미술관 밖에서도 시민과 관광객이 자연스럽게 문화 경험에 참여할 수 있었고, 작품은 공원과 광장, 수변 공간, 기차역까지 도시 전역으로 확장됐다. 도시 자체가 하나의 전시장이자 디자인 플랫폼이 된 셈이다.

공공 디자인의 가능성을 보여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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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io Mieke Meijer, Airboretum 자료 제공 The Hague & Partners

블로업 주빌리는 인플레이터블 아트의 가능성을 보여준 전시이자 공공 디자인이 도시 경험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증명하고 있다. 작품들은 거대한 규모에도 불구하고 임시적이고 유연하다. 그러나 그 존재감으로 오히려 단단한 역사적 건축과 도시 공간을 새롭게 인식하게 만든다. 작품 그 자체로는 다소 가볍고 유희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작품이 도시 전체에 배치될 때 그 가벼움은 더 강력해진다. 사람들은 미술관 밖에서 예술을 만나고, 익숙한 거리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됐다. 공기라는 가장 가볍고 익숙한 재료로 도시 경험 자체를 재설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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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ve Messam, ‘Orange’ 자료 제공 The Hague & Partners

결국 ‘블로업 주빌리’가 남긴 가장 큰 성과는 거대한 풍선 조형물이 아니다. 네덜란드 디자인 특유의 유머와 실험성, 그리고 공공성이 가장 잘 드러난 대표적인 사례다. 한 달 동안 헤이그 시민과 방문객들에게 도시가 디자인될 수 있는 공공 무대임을 체감하게 만든 것, 그것이 이 프로젝트가 남긴 진정한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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