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폴 공항부터 아티포트까지, 네덜란드 디자이너 코 리앙 이에의 디자인 세계
스테델릭 미술관, 첫 대규모 회고전 〈Kho Liang Ie – Mid-Century Modernist〉
20세기 네덜란드 디자인을 대표하는 디자이너 코 리앙 이에의 업적을 재조명하는 전시가 암스테르담 스테델릭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코 리앙 이에가 세상을 떠난 지 50여 년 만에 개최되는 첫 대규모 미술관 회고전으로, 그의 전 생애와 디자인 철학을 총체적으로 조명한다.

20세기 네덜란드 디자인을 논할 때 코 리앙 이에(Kho Liang Ie, 1927~1975)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1927년 당시 네덜란드령 동인도였던 인도네시아 자바섬 마젤랑에서 태어나 1949년 네덜란드로 이주했다. 이후 암스테르담의 헤리트 리트벨트 아카데미 (Gerrit Rietveld Academie)에서 실내건축을 공부하며 디자이너의 길로 들어섰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 사회가 기능성과 합리성을 중시하는 모더니즘 디자인에 집중했을 때 코 리앙 이는 공간과 사람의 관계에 주목했다. 그는 가구를 하나의 오브제로 바라보기보다 사용자의 경험을 만드는 요소로 이해했고, 건축과 인테리어, 그래픽 디자인을 통합하는 디자이너로 아이덴티티를 구축했다. 그의 이러한 시각은 훗날 그의 대표 프로젝트인 스키폴 공항 디자인과 아티포트의 브랜드 혁신으로 이어졌다.

특히 그는 다양한 국가의 디자인 문화를 네덜란드에 소개하며 국제적인 디자인 교류를 이끈 인물로 평가받는다. 뛰어난 안목과 폭넓은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새로운 디자이너들을 발굴하고 연결했으며, 제품 디자이너를 넘어 디자인 디렉터이자 문화 기획자로 활동했다.

이러한 코 리앙 이에의 업적을 재조명하는 대규모 회고전 ‘Kho Liang Ie – Mid-Century Modernist’가 암스테르담 스테델릭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오는 10월 18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전시는 코 리앙 이에가 세상을 떠난 지 50여 년 만에 개최되는 첫 대규모 미술관 회고전으로, 그의 전 생애와 디자인 철학을 총체적으로 조명한다.

전시에는 코 리앙 이에의 대표 가구와 공항 디자인, 그래픽 작업, 전시 디자인, 미공개 아카이브 자료 등 200점이 넘는 작품과 아카이브 자료가 소개된다. 가구 디자인과 인테리어 프로젝트는 물론 그래픽 디자인, 전시 디자인, 건축 관련 작업까지 폭넓게 다뤄지며, 코 리앙 이에가 남긴 디자인 유산을 입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의 실내 디자인 프로젝트와 스테델릭 미술관 전시 디자인, 아티포트를 위한 전시 부스 등이 재구성돼 당시 그의 혁신적인 공간 디자인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네덜란드 가구 브랜드 아티포트와의 협업이다. 코 리앙 이는 1958년 아티포트의 미학 자문가이자 디자이너로 합류해 브랜드의 방향성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당시 전통적인 가구 제조업체였던 아티포트를 국제적인 디자인 브랜드로 성장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프랑스 디자이너 피에르 폴랭과 영국 출신 디자이너 제프리 하코트를 영입해 브랜드 혁신을 이끌었다.

그가 디자인한 070 소파 시리즈와 C683 소파, 416 체어 등은 오늘날까지도 아티포트의 대표적인 클래식 컬렉션으로 생산되고 있다. 절제된 형태와 탁월한 착석감, 공간과 조화를 이루는 우아한 비례는 코 리앙 이에 디자인의 특징으로 꼽힌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대표작을 통해 그가 구축한 아티포트의 디자인 철학과 브랜드 정체성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이번 전시는 또한 코 리앙 이에를 단순한 가구 디자이너가 아닌 ‘통합적 디자이너’로 조명한다. 그는 의자 한 점을 설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공간 전체의 경험을 디자인했다. 공항의 동선과 사인 시스템, 전시 공간의 구성, 가구와 조명의 관계까지 하나의 유기적인 환경으로 바라봤다. 이번 회고전은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이러한 사고방식을 보여주며, 디자인이 단순한 형태의 창조가 아니라 사람과 공간, 경험을 연결하는 작업임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전시 디자인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 네덜란드의 공간·전시 디자인 스튜디오 스트레이커스 스튜디오(Strijkers Studio)의 대표 엘리네 스트레이커스가 전시 공간 디자인을 맡아 코 리앙 이에의 모더니즘 언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가구와 그래픽, 사진, 도면, 아카이브 등 다양한 내용이 하나의 환경 안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투명한 구조물과 레이어를 활용한 공간 연출은 작품과 기록 사이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허문다.

전시장을 거닐다 보면 코 리앙 이에가 단순히 가구를 디자인한 인물이 아니라 공간 전체의 경험을 설계한 디자이너였음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관람객은 그가 직접 디자인했던 아티포트의 의자에 앉아, 그가 고민했던 공간의 흐름을 따라 이동하며, 디자인이 사람의 행동과 감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직접 경험한다. 특히 전시 디자인은 과하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작품과 공간이 조화를 이루도록 돕는다. 이러한 균형감 덕분에 관람객은 전시 연출에 압도되기보다 디자이너의 작업 세계에 더욱 깊이 몰입하게 된다.

무엇보다 이번 전시가 특별한 이유는 관객 참여형 구성에 있다. 일반적인 디자인 전시가 작품을 감상 대상으로만 제시하는 것과 달리, 전시장에는 코 리앙 이에가 디자인한 아티포트의 의자와 소파 일부가 실제로 배치돼 관람객들이 직접 앉아볼 수 있다. 이는 디자인을 단순히 눈으로만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체험하게 하려는 시도다. 관람객들은 코 리앙 이에가 추구했던 편안함과 인간 중심적 설계를 직접 체험하며, 그의 디자인이 왜 지금까지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지를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

반세기 전 활동했던 디자이너이지만, 코 리앙 이에가 남긴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기능성과 아름다움, 그리고 인간 중심의 경험을 결합한 그의 디자인은 오늘날 디자인계가 다시 주목하는 가치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는 단순한 회고전을 넘어 코 리앙 이에가 꿈꿨던 디자인의 본질과 마주할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다.
〈Kho Liang Ie – Mid-Century Modernist〉
주소 암스테르담 스테델릭 뮤지엄
기간 2026년 5월 14일 – 10월 18일
운영 시간 매일 10:00 – 18:00
웹사이트 stedelijk.n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