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출판사는 왜 브랜드와 협업할까?
책 너머의 경험을 만드는 출판사×브랜드 협업 4
안경, 문구, 독서 도구, 차. 책을 읽는 순간 곁에 놓이는 물건들. 최근 눈길을 끈 협업 사례 네 가지를 소개한다.

책이 다시 힙해졌다. 종이책을 읽고, 밑줄을 긋고, 기록하는 행위가 취향을 드러내는 방식이 됐다. 출판사들의 행보도 달라졌다. 책 너머의 경험을 여러 분야 브랜드와 함께 만들기 시작한 것. 안경, 문구, 차처럼 책을 읽는 순간 곁에 놓이는 물건들. 최근 눈길을 끈 네 가지 협업 사례를 소개한다.
민음사×윤, 안경을 쓰고 시를 읽는 시간
독서안경 ‘리더스 II’



베를린 기반 아이웨어 브랜드 윤(YUN)과 민음사의 두 번째 만남이다. 지난해 여름 텀블벅 펀딩으로 첫선을 보인 ‘리더스(Readers)’ 안경이 1년 만에 시즌 2로 돌아왔다. 안경 브랜드와 출판사가 왜 만났을까. 윤과 민음사의 접점은 ‘방해받지 않는 몰입의 시간’이었다. 첫 번째 프로젝트가 ‘어디서 읽을까’를 상상했다면, 이번에는 ‘어떻게 읽을까’로 질문을 옮겼다. 리더스 II의 콘셉트는 ‘포엣 코어(Poet Core)’다. 빠르게 흘러가는 하루 속에서 잠시 멈춰 시를 읽고,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위한 프로젝트다.


출처 @yun.seoul
안경은 오래 읽는 사람을 위한 도구답게 착용감에 집중했다. 렌즈 세로폭을 넓혀 시야를 확보했고, 14g의 가벼운 무게로 장시간 착용에도 편안하다. 안경 다리에는 민음사 로고와 책 그래픽을 새겨 협업의 정체성을 담았다. 안경 외에 텀블벅 한정 패키지로 구성된 오브제도 함께 나왔다. 안경 케이스 안쪽에는 양안도 시인의 시 구절을 새겼고, 에코백에는 민음사 시집에서 발췌한 문장을 담았다.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별도로 개발한 룸 스프레이는 책을 펼치기 전 공간을 정돈하는 작은 리추얼을 제안한다.
창비×가위, 독서 생활 곁에 두는 물건들
클럽창비 3기 웰컴키트


창비가 운영하는 독서 멤버십 프로그램 ‘클럽창비’. 2025년 2기에 이어 2026년 3기 역시 패턴 디자인 브랜드 가위(kawi)가 기획과 디자인, 제작을 맡았다. 가위는 선물을 매개로 포장지, 봉투, 카드를 만드는 패턴 디자인 브랜드다. 3기의 주제는 ‘무르익는 시간 속에서 함께’다. 가위는 이를 ‘창비의 책장’이라는 콘셉트로 풀었다. 책장을 네 개의 칸으로 나누고, 각각 사라져 가는 시간, 반복되는 시간, 쌓여가는 시간, 그리고 창비의 시간을 담았다. 칸마다 시간의 결에 맞는 오브제와 책을 함께 배치했고, 책장 곳곳에는 꽃과 동물이 등장한다. 이들은 책장을 돌보고 시간을 함께 쌓아가는 ‘책장지기’다. 책장을 닦고, 오브제를 가지고 놀며 공간을 채우는 작은 동작 하나하나를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구성품 역시 이 콘셉트를 중심으로 이어진다. 세라믹 브랜드 무자기가 제작한 찻잔을 들면 바닥에 새 일러스트가 나타난다. 독서 노트에는 사계절을 담은 스톤페이퍼 북커버 네 종을 더했다. 스톤페이퍼는 잘 찢어지지 않고 물에 강해 오래 사용할 수 있으며, 포장지로도 활용 가능하다. 상자는 내부 지지대를 제거하면 보관함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고, 창작과비평 완독 책갈피와 스티커도 함께 구성했다. 웰컴키트는 일회성 굿즈가 아니라 앞으로 이어질 독서 생활의 시작을 함께하는 물건이 된다.
시공사×노플라스틱선데이, 구석기에서 발굴한 독서 도구
뗀석기 독서링

2026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시공사는 ‘책 파는(Digging) 시공사’라는 콘셉트를 선보였다. ‘책을 판다’는 출판사의 역할과 책을 ‘파고든다’는 독서의 행위를 중의적으로 풀어낸 것이다. 노플라스틱선데이와 함께 만든 ‘뗀석기 독서링’은 이 콘셉트를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준 오브제다. 모티프는 후기 구석기 시대의 석기인 슴베찌르개다. 돌을 깎아 만든 원시 도구의 실루엣을 독서링으로 옮겼다. 여기에 암각화에서 영감을 받은 ‘책 읽는 사람’ 모양의 참(charm)을 더해 책갈피 기능까지 갖췄다. 책장을 펼쳐 고정하면서도 두 손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한 독서 도구다.


노플라스틱선데이는 ‘일주일에 하루쯤 플라스틱 쓰레기 없는 일상을 보내자’는 캠페인에서 출발한 디자인 브랜드다. 깨끗한 폐플라스틱과 수명을 다한 다회용기를 수거해 분류·분쇄한 뒤 새로운 제품으로 만드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이전에도 유물을 모티프로 한 미니 피규어를 선보인 바 있는데, 이번에는 출판사와 만나 ‘발굴’이라는 이야기까지 얹었다. 유물의 형태를 빌렸지만 소재는 철저히 오늘의 것이다. 시공사의 콘셉트와 노플라스틱선데이의 재활용 디자인이 만나 기능과 위트를 모두 갖춘 독서 오브제가 나왔다.
문학동네×맥파이앤타이거, 차 우리는 시간과 책 읽는 시간은 닮아있다
북클럽문학동네 9기 웰컴키트

2026년 북클럽문학동네 9기 얼리버드 가입자를 위한 웰컴키트에는 조금 색다른 구성품이 담겼다. ‘사색과 몰입을 위한 차 꾸러미’. 동아시아 차 브랜드 맥파이앤타이거가 기획과 제작을 맡았다. 차와 책. 둘 다 느린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이 만남은 자연스럽다. 맥파이앤타이거는 까치와 호랑이가 함께 등장하는 민화 ‘호작도(虎鵲圖)’에서 이름을 따온 브랜드로, 북촌과 성수에서 티스토어를 운영하며 차를 일상 가까이 끌어오고 있다.

맥파이앤타이거는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차와 책이 닮은 점을 오래 관찰했다. 구불거리며 바싹 마른 찻잎과 꼬부라진 활자, 물이 끓고 찻잎이 우러나기를 기다리는 시간과 첫 장을 펼쳐 마지막 장에 이르는 독서의 여정. 그 생각은 웰컴키트의 구성으로 이어졌다. 차를 우리는 동안 읽을 책을 추천하고, 책을 읽는 동안 마실 차를 제안하는 순환. 표지에는 책 읽는 까치와 호랑이가 그려져 있다. 앞서 언급한 호작도가 그대로 담긴 이미지다. 표지를 책처럼 펼치면 안에 차 2종이 들어 있고, 각 차에 어울리는 책 추천이 함께 실려 있다. 느리게 우러나는 차, 느리게 읽는 책. 두 시간이 나란히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