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제너레이션이 그리는 디자인의 미래, 디자인 퍼레이드 2026
여름이 되면 프랑스 남부 도시 이에르(Hyères)는 세계가 주목하는 차세대 디자이너들의 무대로 변신한다. 빌라 노아유(Villa Noailles)가 주최하는 디자인 퍼레이드 때문이다. 올해로 스무 해째를 맞은 이 거침없는 디자인 행진의 현장을 소개한다.

여름이 되면 프랑스 남부 도시 이에르(Hyères)는 세계가 주목하는 차세대 디자이너들의 무대로 변신한다. 빌라 노아유(Villa Noailles)가 주최하는 디자인 퍼레이드 때문이다. 2006년에 시작한 이 국제 디자인 행사는 선제적으로 신진 디자이너를 발굴하는 디자인 플랫폼이자 인큐베이터로 유명하다. 실제로 콘스탕스 기세, 나초 카르보넬, 알렉상드르 뱅자맹 나베 등이 이곳을 거쳤다. 세계적인 디자이너와 브랜드 디렉터, 업계 관계자들이 디자인 퍼레이드에서 발견한 새로운 인물들이 프랑스 전역은 물론 세계를 누비는 스타가 됐다. 올해로 스무 해째를 맞은 이 거침없는 디자인 행진의 현장을 소개한다.

20주년 맞은 디자인 퍼레이드
올해 디자인 퍼레이드는 지난 20년의 성과를 돌아보고 디자인의 현재와 미래를 조망하는 특별한 자리를 마련했다. 행사의 중심축이라고 할 수 있는 어워드는 본래 제품 디자인 부문에서 출발했지만 2016년 실내 건축 부문인 ‘디자인 퍼레이드 툴롱(Design Parade Toulon)’을 신설해 현재는 2개 부문을 심사한다. 올해는 제품 디자인 부문 20주년과 실내 건축 부문 10주년을 기념해 역대 수상자 특별전과 다양한 전시, 강연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또한 올해 결선에는 유럽을 비롯해 에콰도르, 멕시코, 한국 등 남미와 아시아 등 다양한 문화권의 디자이너들이 이름을 올렸다. 서로 다른 배경을 지닌 젊은 디자이너들은 지역의 전통과 사회적 이슈, 환경 문제를 각자의 시선으로 해석했다. 전반적으로 공예적 기술과 지역성, 생태적 접근을 바탕으로 새로운 생활 방식과 공동체의 가능성을 제안한 작업이 두드러졌다.




재료와 생산 방식의 재해석, 제품 디자인 부문
올해 제품 디자인 부문 심사위원 대상은 에콰도르 출신인 틴 아얄라(Tin Ayala)에게 돌아갔다. 아얄라는 안데스 지역 선先콜럼버스 시대의 도자기인 ‘후아코(Huaco)’를 비디오게임과 만화 속 캐릭터와 결합한 조형 시리즈를 선보였다. 과거의 문화유산과 현대 대중문화를 엮어낸 이 작업은 식민주의 이후에도 이어지는 문화적 연속성과 정체성을 유머러스하면서도 비판적으로 풀어내며 전통 공예를 동시대의 문화적 서사로 재해석했다. 수상과 함께 그는 프랑스 마르세유의 유리 공방 시르바(Cirva) 레지던시에 참여하며, 결과물은 내년 여름 빌라 노아유에서 열리는 개인전에서 공개할 예정이다.

관객상은 멕시코의 에두아르도 알타미라노(Eduardo Altamirano)가 수상했다. 그가 선보인 스피커 ‘소니도 마테리아(Sonido Materia)’는 고성능 오디오의 완성도보다 소리가 만들어지는 가장 원초적인 순간에 주목한다. 코일과 자석, 종이 진동판만으로 구성한 최소한의 구조로 기술을 감추기보다 드러내며 청취 경험 자체에 집중했다. 프랑스의 마티스 브리뇨(Matisse Vrignaud)와 룬자 메드주브(Lundja Medjoub)는 시간을 정확하게 측정하지 않는 ‘불완전한 촛불 시계’로 세브르 국립도자기공방 레지던시상을 받았다. 디지털 시대의 효율성과 속도에 질문을 던지며 디자인이 제안할 수 있는 또 다른 시간 감각을 탐색해 주목받았다. 올해 결선작들은 공예와 지역성, 생산 방식, 사회적 메시지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엮어내며 동시대 디자인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기억과 장소의 재구성, 실내 건축 부문
실내 건축 부문에서는 프랑스의 발랭탕 베우(Valentin Bayoud)가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다. 그는 전통적인 벽난로에서 불 대신 물을 중심 요소로 치환한 명상적 공간 ‘아쿠아 프리미티바’를 구현했다. 공동체가 함께 머물며 대화를 나누고 자연을 바라보는 장소를 구상한 이 프로젝트는 휴식과 사색, 교류의 시간을 회복하는 새로운 공용 공간의 가능성을 제안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랑프리 외에도 개성 있는 프로젝트들이 특별상을 받았다. 대표적으로 프랑스·이탈리아 듀오 요안 위베르(Yohann Hubert)와 카를로타 라가치(Carlotta Lagazzi)는 바다에서 수거한 폐부표와 로프, 선박 잔해 등 해양 폐기물에 새로운 공공적 가치를 부여한 작업으로 모빌리에 나쇼날상을 수상했다.

또한 블랑슈 미조네(Blanche Mijonnet)는 남프랑스의 강렬한 햇빛을 민들레의 섬세한 씨앗에 빗대어 표현한 ‘솔레이 솔레이(Soleil Soleil)’로 샤넬 비주얼 머천다이징상을 받았다. 또 다른 주목할 만한 작업으로는 보리스 코장(Boris Cojean)의 ‘노란 집(La Maison Jaune)’과 이재모의 ‘새의 방(La Chambre des Oiseaux)’이 있다. 보리스 코장은 밀랍과 노란색을 매개로 기억과 감각을 환기하는 공간을, 이재모는 새의 시선에서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풀어낸 작업을 선보였다. 두 작업 모두 공간이 만들어내는 감정과 서사에 집중하며 자연과 일상의 경험을 섬세하게 재해석했다. 올해 실내 건축 부문에서는 지속 가능한 소재와 공예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공간을 하나의 서사로 풀어낸 작업이 눈길을 끌었다.


새로운 관점, 한국 디자인의 새로운 이정표
디자인 퍼레이드 2026을 관통한 키워드는 ‘새로운 관점’이었다. 이전 세대가 산업과 기술, 형태의 혁신에 주목했다면 올해 참가자들은 역사와 기억, 생태와 공동체, 지역성과 문화적 정체성을 디자인의 출발점으로 삼아 그것이 관계 맺는 사람과 장소, 문화에 주목했다. 특히 올해 행사는 한국 디자인계에도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디자인 퍼레이드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인 디자이너가 공식 경쟁 부문에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디자이너 이재모의 최종 진출은 개인의 성과를 넘어 한국 디자이너들이 국제 디자인 무대에서 새로운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Interview
이재모 디자이너 헤드 제네바(HEAD Genève) 졸업생
“신진 디자이너에게 자신의 작업을 알릴 기회를 제공하고, 이후 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 관계와 기반을 마련해 준다는 점이 디자인 퍼레이드의 가장 큰 가치가 아닐까.”

파이널리스트 선정 소식을 들었을 때 기분이 어땠나?
그동안 이어온 작업과 고민이 외부에서도 의미 있게 받아들여졌다는 점에서 안도감을 느꼈다. 작업을 하다 보면 스스로를 의심하는 순간이 많은데, 이번 선정을 통해 그간 다뤄온 주제와 작업 방식이 다른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어 뿌듯했다.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서도 한층 확신을 갖게 된 계기였다.
이번에 출품한 프로젝트를 소개해 달라.
‘새의 방’은 실내 공간을 인간과 비인간이 교차하는 장소로 바라보고, 열린 창을 통해 새와 마주하는 하나의 장면을 상상한 프로젝트다. 빌라 노아유의 장소성은 이번 작업의 중요한 출발점이었다. 특히 노아유 부부와 긴밀하게 교류했던 초현실주의 작가들과 그들이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다뤘던 방식에 주목했다. 현실과 꿈 사이를 오가는 상징적 존재인 새를 언덕의 기억과 빌라의 역사적 맥락을 잇는 매개로 설정하고, 직접 그린 하늘과 체크무늬를 커튼과 벽지, 카펫에 적용해 공간의 전체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 안에는 새의 존재에 의해 변형된 네 가지 오브제를 배치했다.

지원서와 프로젝트를 준비한 과정이 궁금하다. 프레젠테이션에서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었다면?
지중해가 내려다보이는 이에르 언덕 위 빌라 노아유의 한 방을 디자인한다는 구체적인 과제가 있었기 때문에 장소성과 빌라 노아유의 문화적 유산을 함께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리서치에 충분한 시간을 들였다. 그 과정에서 이에르는 해안과 염습지, 섬과 언덕이 맞닿아 다양한 새들이 서식하고 이동하는 곳이라는 점을 발견했고, 빌라 노아유는 만 레이, 살바도르 달리 등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이 교류했던 장소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자연환경과 빌라 노아유의 역사적 배경이 ‘새’라는 존재를 통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고 판단해 이를 프로젝트의 중심 개념으로 삼았다. 프레젠테이션에서는 장소의 특성 과 빌라 노아유의 역사, 그리고 제안한 공간의 이미지가 하나의 서사로 읽히도록 구성하는 데 집중했다.


수많은 국제 지원자 가운데 선정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본인의 강점이나 차별점이 있었다면?
주어진 장소의 자원을 프로젝트에 구체적으로 활용한 부분이 강점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자연환경은 누구나 익숙하게 다루는 주제이지만, 이를 빌라 노아유와 이에르라는 장소의 맥락 안에서 풀어낸 방식이 심사위원들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된 것 같다. 함께 제출한 포트폴리오에 담긴 기존 작업과 이번 프로젝트가 일관성이 있다는 점도 중요했다고 생각한다.
선정 이후 빌라 노아유로부터 어떤 지원을 받았나? 일반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
제작비와 숙박, 교통 등에 일정 지원금을 제공한다. 하지만 금전적인 지원보다 더 큰 자원은 빌라 노아유가 오랫동안 구축해 온 파트너십과 제작 네트워크다. 벽지와 커튼, 카펫, 타일 등 분야별 공식 파트너 기업이 있어 프로젝트에 필요한 소재와 패턴을 맞춤 제작할 수 있다. 파트너사가 아닌 업체와 협업해야 하는 경우에도 빌라 노아유가 쌓아온 신뢰 덕분에 작업이 훨씬 수월하게 진행된다. 무엇보다 이 과정에서 맺은 관계가 전시 이후에도 이어져 실제 커리어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실제로 프랑스 장인 및 기업 파트너와 협업하는 경험은 어땠나?
“필요한 것은 모두 제공할 테니 꿈꾸는 방을 마음껏 만들어보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어떤 아이디어를 제안하더라도 그것을 실현할 방법을 함께 고민하고 찾아주려는 분위기였다. 특히 프랑스를 대표하는 텍스타일 메종인 피에르 프레Pierre Frey와 협업해 나만의 커튼과 벽지를 제작했던 경험은 개인적으로도 매우 뜻깊었다.
디자인 퍼레이드의 가장 큰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관계자로부터 “빌라 노아유의 가족이 된 것을 환영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 한마디가 이 커뮤니티의 일원이 됐다는 느낌을 줬다. 앞으로 이 관계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어질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수상 여부와 관계없이 참가자들이 빌라 노아유의 네트워크를 통해 새로운 전시와 개인 작업, 기업 협업으로 이어지는 사례를 많이 봤다. 신진 디자이너에게 자신의 작업을 알릴 기회를 제공하고, 이후 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 관계와 기반을 마련해 준다는 점이 디자인 퍼레이드의 가장 큰 가치가 아닐까.
이번 과정을 통해 프랑스 디자인계에 대해 새롭게 발견한 부분이 있다면?
디자이너와 공예가, 전문 제작 기업이 긴밀하게 협업하는 구조가 잘 갖춰져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지역의 장인과 제작자가 프로젝트의 개발과 구현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경우가 많아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과 관계를 맺는 일 자체가 중요한 과정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파이널리스트들에게는 샤넬의 쇼윈도를 디자인하는 과제도 주어졌다. 이를 통해 샤넬과 협업하는 여러 장인과 공방을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었는데, 자수와 깃털 장식, 금세공 같은 전통 기술을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이를 동시대 디자인과 연결하는 방식이 프랑스 디자인의 정체성을 지탱하는 중요한 기반이라고 생각했다.


지원을 고민 중인 한국 디자이너들에게 조언을 바란다.
실내 건축 부문을 기준으로 이야기하자면 가장 중요한 것은 포트폴리오다. 공모 요강에서 직접 강조하는 부분은 아니지만, 기존 작업을 통해 아이디어를 실제 결과물로 구현한 과정을 중요하게 보는 것 같았다. 포트폴리오에 담긴 작업이 반드시 실내 건축일 필요는 없다. 다만 지원 프로젝트가 기존 작업의 관심사나 작업 방식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면 지원서의 설득력이 훨씬 높아질 수 있다. 지역적 맥락과 현지 자원을 충분히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프랑스 남부 지중해 지역의 환경과 문화적 요소를 어떻게 작업에 반영할 것인지, 선택한 재료를 어떤 방식으로 실험할 것인지, 실제 제작과 설치가 가능한지도 구체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아이디어의 독창성뿐 아니라 실현 가능성까지 함께 제시하는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기간 6월 25~28일(페스티벌), 6월 25일~8월 30일(전시)
장소 프랑스 이에르 및 툴롱 일원
주최 빌라 노아유
사진 Luc Bertrand
웹사이트 villanoailles.com
글 양윤정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