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유로화를 위한 10가지 디자인
문화와 자연으로 그려낸 유럽의 정체성
유럽을 대표하는 화폐인 유로(Euro)가 새로운 얼굴을 준비하고 있다. 새로운 유로 지폐의 주제는 크게 두 가지다. 유럽의 문화적 인물과 공간을 담은 ‘유럽 문화(European culture)’, 그리고 유럽의 자연환경을 상징하는 ‘강과 새(Rivers and birds)’다. 각각 ‘공유된 문화 공간’과 ‘다양성 속의 회복력’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유럽의 정체성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풀어냈다.

유럽을 대표하는 화폐인 유로(Euro)가 새로운 얼굴을 준비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유럽의 공동 정체성과 문화적 다양성을 보다 잘 반영하기 위해 유로화의 리디자인을 진행 중이다. 2021년 말 시작된 프로젝트는 주제와 모티프 선정, 디자인 공모를 거쳐 현재 최종 디자인을 결정하기 위한 단계에 접어들었다.

새로운 유로 지폐의 주제는 크게 두 가지다. 유럽의 문화적 인물과 공간을 담은 ‘유럽 문화(European culture)’, 그리고 유럽의 자연환경을 상징하는 ‘강과 새(Rivers and birds)’다. 각각 ‘공유된 문화 공간’과 ‘다양성 속의 회복력’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유럽의 정체성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풀어냈다. 1,200명이 넘는 지원자 가운데 25명이 디자인 제안 단계에 선발됐으며, 이후 독립 심사위원단의 심사를 거쳐 주제별 5개씩 총 10개의 디자인이 최종 후보에 올랐다. 이번에 공개된 10개의 디자인은 아직 최종안이 아닌 제안 단계다. ECB는 시민 의견 조사와 후속 선정 과정을 거쳐 2026년 말 최종 디자인을 결정할 예정이라고. 같은 주제에서 출발했지만 이를 지폐 위에 풀어낸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초상과 콜라주부터 인포그래픽, 강과 새의 풍경까지, 10개의 디자인에 담긴 서로 다른 유럽의 모습을 살펴보자.
Design Proposal A – 요스트 그루턴스(Studio Joost Grootens)




스튜디오 요스트 그루턴스(Studio Joost Grootens)는 문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사람의 눈과 입을 통해 표현했다. 지폐 앞면에는 인물의 얼굴 전체 대신 눈과 입을 과감하게 확대해 담았다. 눈은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과정을, 입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사람들이 문화를 만들고 공유하는 방식 자체를 이미지로 풀어낸 것이다.
뒷면에는 다양한 연령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여 교류하는 모습을 담았다. 앞면에서 한 사람의 시선과 표현으로 시작한 이야기가 뒷면에서는 여러 사람의 만남으로 이어진다. 문화는 한 사람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보고, 말하고, 교류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는 의미를 지폐의 앞뒷면에 연결해 담았다.
Design Proposal B – 푼크트폼슈트리히(PunktFormStrich)




푼크트폼슈트리히(PunktFormStrich)는 유럽에 서식하는 다양한 새와 자연환경을 지폐 위에 담았다. 각 권종마다 서로 다른 종류의 새와 서식지가 등장하며, 유럽의 다양한 자연 풍경을 보여준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새의 특징을 그래픽으로 표현한 방식이다. 지폐를 가로지르는 수평 막대에는 새의 울음소리를 시각화하고, 수직 눈금에는 비행 속도를 표시했다. 앞면에는 각 새에 대한 간단한 정보도 함께 담아 지폐를 하나의 작은 인포그래픽처럼 구성했다. 뒷면에는 EU 기관 건물과 유럽 지도를 배치해 자연의 풍경과 유럽 공동체를 하나의 디자인 안에 연결했다.
Design Proposal C – 노이에 게슈탈퉁(Neue Gestaltung GmbH)




노이에 게슈탈퉁(Neue Gestaltung GmbH)은 ‘유럽은 하나의 공유된 문화 공간’이라는 명확한 메시지에서 디자인을 시작했다. 각 지폐는 서로 다른 색상과 중심 이미지를 사용해 권종을 쉽게 구분할 수 있도록 했으며, 앞면에는 시대를 넘어 유럽의 문화에 영향을 미친 인물들을 담았다. 뒷면에는 별자리가 겹쳐진 유럽 지도와 함께 공연예술, 음악, 학교, 도서관, 박물관, 공공광장 등 오늘날의 다양한 문화 공간을 표현했다. 이곳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구체적인 얼굴 없이 그려 누구나 자신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투영할 수 있도록 했다.
Design Proposal D – 루디 게지(Rudy Guedj)와 프랑수아 지라르 뫼니에(François Girard-Meunier)




루디 게지(Rudy Guedj)와 프랑수아 지라르 뫼니에(François Girard-Meunier)는 강의 흐름을 따라 이어지는 새들의 여정을 지폐에 담았다. 산속에서 시작한 강물이 바다에 이르는 과정에 여섯 종의 새와 각각의 서식지를 배치하고, 여기에 빛의 변화를 더해 하나의 연속된 풍경을 완성했다. 새들의 흔적을 풍경 곳곳에 숨겨두어, 마치 탐조하듯 지폐를 자세히 들여다보도록 유도한다. 뒷면에는 EU 기관 건물과 함께 다양한 손의 움직임을 표현했다. 무언가를 붙잡고 지탱하거나 서로 맞추고 토론하는 모습으로 유럽 공동체를 이루는 협력의 의미를 보여준다.
Design Proposal E – 미르시니 바르도풀루(Myrsini Vardopoulou)




미르시니 바르도풀루(Myrsini Vardopoulou)는 인물 자체보다 그들이 남긴 업적과 가치에 초점을 맞췄다. 지폐에는 인물의 초상과 함께 원형 그래픽과 다양한 상징을 배치해 각 인물의 작업과 생각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멀리서 보면 간결하고 통일된 구성이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인물의 업적을 떠올릴 수 있는 여러 상징과 디테일을 발견할 수 있다. 서로 다른 시대와 분야에서 활동한 인물들을 하나의 디자인 언어로 연결해 유럽이 공유해온 문화적 가치를 표현했다.
Design Proposal F – 얀 로베르트 뒨벨러(Jan Robert Dünnweller)




얀 로베르트 뒨벨러(Jan Robert Dünnweller)는 EU의 공식 모토인 ‘다양성 속의 통합(United in Diversity)’을 콜라주로 표현했다. 유럽을 대표하는 인물들의 손으로 그린 초상을 중심으로 다양한 형태와 질감의 그래픽을 겹쳐 하나의 이미지를 완성했다. 서로 다른 요소가 모여 새로운 하나의 모습을 만드는 콜라주라는 표현법은 다양한 문화적 정체성이 공존하면서도 공동의 역사와 가치를 공유하는 유럽의 모습을 보여준다.
Design Proposal G – 루비오 & 델 아모(Rubio & del Amo)와 크루스 마스 크루스(Cruz más Cruz)




루비오 & 델 아모(Rubio & del Amo)와 크루스 마스 크루스(Cruz más Cruz)의 디자인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지폐 중앙에서 정면을 바라보는 인물의 시선이다. 유럽의 문화를 만들어온 과거의 인물과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 마주 보는 듯한 장면을 통해, 이들의 생각과 정신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표현했다.
각 지폐에는 명확하고 일관된 색상과 선형 패턴을 적용해 시리즈 전체의 통일감을 만들었다. 숨겨진 그래픽 장치도 있다. 지폐를 가로 방향으로 바라보면 네 개의 세로 블록이 각각 알파벳 E, U, R, O에서 착안한 형태로 구성돼 있다. 화폐의 이름 자체를 지폐를 구성하는 그래픽 구조로 활용한 셈이다.
Design Proposal H – 아틀리에 고펠-토펑퐁(Atelier Goppel-Toperngpong)




아틀리에 고펠-토펑퐁(Atelier Goppel-Toperngpong)은 물의 다양한 성질을 EU 기관의 역할에 빗대어 디자인했다. 생명의 기반이 되는 물은 유럽의 다양한 새가 살아가는 환경을 만들고, 균형과 지속성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작은 물방울 하나는 미미해 보이지만 오랜 시간 흐르면 산맥의 형태까지 바꿀 만큼 강한 힘을 갖는다. 디자인팀은 이를 유럽 공동체와 연결해, 한 사람의 힘은 작아 보여도 같은 목표를 가진 수많은 사람이 모이면 큰 힘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의미를 담았다.
Design Proposal I – 이자벨 다에롱(Isabelle Daëron)




이자벨 다에롱(Isabelle Daëron)은 새의 날갯짓과 강물의 흐름에서 발견한 ‘움직임’을 디자인의 중심에 두었다. 앞면에는 한 마리의 새를, 뒷면에는 무리를 지어 날아가는 새들을 담아 자연과 사회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표현했다. 강의 발원지에서 바다까지 이어지는 새의 비행을 따라 유럽의 다양한 풍경도 함께 펼쳐진다. 여기에 펠트펜으로 직접 그린 패턴과 디지털로 만든 벡터 패턴을 서로 겹치고 엮으며, 서로 다른 요소가 어우러져 하나를 이루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Design Proposal J – 빌레 티에태바이넨(Ville Tietäväinen)




빌레 티에태바이넨(Ville Tietäväinen)은 여러 권종의 지폐를 연결해 하나의 연속적인 이야기를 읽을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이야기는 산속에서 태어난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는 과정에서 시작한다. 각각의 지폐에는 자연 서식지에서 살아가는 유럽의 새가 등장하며, 액면가가 높아질수록 풍경 역시 점차 바다에 가까워진다. 보안박 역시 지폐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요소로 활용했다. 강의 흐름에 따른 각 단계와 그에 해당하는 새를 담아 하나의 인포그래픽처럼 구성했다. 뒷면의 EU 기관 건물 역시 앞면에 등장하는 새의 날개와 이어지며 앞뒤 면의 이미지를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한다.
같은 주제에서 출발한 10개의 디자인은 오늘날의 ‘유럽다움’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에 대한 서로 다른 시각적 답변이라 할 수 있다. 다만 현재 공개된 이미지는 어디까지나 최종 유로 지폐가 아닌 디자인 제안안이다. ECB가 제작 가이드라인을 제공했지만, 각 시안은 디자이너의 창의적인 해석을 바탕으로 제작된 만큼 현재 등장하는 인물과 이미지, 그래픽 요소가 최종 지폐에 그대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 가운데 어떤 디자인이 새로운 유로 지폐의 얼굴이 될까? 유럽의 문화와 자연, 다양성을 작은 지폐 한 장에 어떻게 담아낼지, 앞으로 공개될 최종 디자인을 기대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