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문화 허브로, 여관에서 도서관으로

도서관의 정체성이 뒤바뀐 두 공간, 더 래더와 브르제티슬라프 카프카 도서관

영국 콘월 레드루스와 체코 체르베니 코스텔레츠, 두 소도시의 도서관이 최근 정반대의 전환을 겪었다. 도서관이 문화 예술 허브로, 오래된 여관이 도서관으로 변모한 두 사례를 소개한다.

도서관에서 문화 허브로, 여관에서 도서관으로

영국 콘월 레드루스와 체코 체르베니 코스텔레츠, 두 소도시의 도서관이 최근 정반대 방향의 전환을 겪었다. 더 래더(The Ladder)는 도서관이 문화 예술 허브가 됐고, 브르제티슬라프 카프카 도서관(Břetislav Kafka Library)은 오래된 여관이 도서관이 됐다. 두 공간 모두 오래된 건물의 흔적을 지우지 않고, 지역 공동체와 함께 새로운 쓰임을 찾아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구리 광산이 멈춘 마을의 도서관, 문화 예술 허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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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ry Gaylor

더 래더는 1895년 콘월 자선가 존 패스모어 에드워즈(John Passmore Edwards)의 후원으로 지어진 건물로, 영국 정부가 국가적으로 중요한 역사 건축물에 부여하는 그레이드 II 등급으로 지정돼 있다. 레드루스를 지탱하던 구리 광업이 급격히 쇠퇴하며 실업 문제가 심각해지자, 마을에 일자리와 배움의 기회를 만들기 위한 건축 프로그램의 하나로 세워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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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ry Gaylor

에드워즈는 “큰 도시엔 여러 개, 작은 마을에도 적어도 하나씩, 도서관이 어디에나 있지 못할 이유가 없다”라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건물 이름 ‘래더(사다리)’도 그가 남긴 말에서 따왔다. “내가 사다리에 자금을 댈 수 있다면, 사람들이 그걸 딛고 오를 것이다.” 이 도서관은 125년간 레드루스 주민들의 배움터 역할을 하다가, 도서관이 인근 새 건물로 이전하며 낡은 채 방치됐다. 최근 개발업자들이 이 건물을 아파트로 바꾸려 하자, 지역 주민들이 캠페인을 벌여 건물을 지켜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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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ry Gaylor

건물을 넘겨받은 건 펠릭스 모티머(Felix Mortimer)와 조슈아 나우라스(Joshua Nawras)였다. 두 사람은 런던에서 12년간 극단 RIFT를 운영하며 공연장과 무대를 만들어온 사이로, 나우라스는 2020년 문을 닫은 런던의 예술 공간 스틱스(STYX)를 설립하기도 했다. 2021년 레드루스에 있는 예술가 창작 스튜디오 단지 크로위지(Krowji)에 작업실을 두고 있던 두 사람은, 마침 비어 있던 옛 도서관 건물을 보고 가능성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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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콘월 지자체로부터 건물을 임대해 창문을 교체했고, 2023년엔 옛 대학 건물을 어린이집으로 먼저 개조했다. 같은 해 도서관 건물을 매입해 본격적인 리노베이션을 시작했으며, 내셔널 로터리 헤리티지 펀드, 히스토릭 잉글랜드(Historic England), 건축유산 기금 등 여러 공적 지원을 받아 공사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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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ry Gayl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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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은 로컬 스튜디오 씽(Thing)이 보존 건축가 클레어 뉴먼(Claire Newman)과 함께 맡았다. 씽은 2024년 루카스 페이서(Lucas Facer)·패트릭 프라이어(Patrick Fryer)·토마스 랜들페이지(Thomas Randall-Page)가 설립한 건축·리서치 스튜디오다. 이들은 극장 무대의 ‘앞/뒤’ 개념을 건물의 실제 마감 디테일에 그대로 옮겼다. “새로 손댄 부분마다 명확한 앞면과 뒷면이 있다. 무대 뒤를 상징하는 애쉬 스터드 마감은 거칠게 노출하고, 앞면에는 더 정교하고 매끈한 디테일을 적용했다”라는 게 씽의 설명이다.

옛 대학 건물의 어린이집과 옛 도서관의 다목적실은 목공 스튜디오 칩픽스 퍼니처(Chipfix Furniture)가 만든 공연 무대와 서가를 갖췄으며, 두 공간은 깊게 파인 사각 창을 통해 서로 시각적으로 연결된다. 더 래더는 빅토리아 시대에 지어진 건물로, 건물 한쪽에 작은 탑이 딸려 있다. 씽은 이 탑 안에 짙은 녹색 목재로 마감한 ‘드림 룸’을 만들었는데, 창가엔 이 목재로 만든 계단식 벤치도 짜 넣었다. 씽은 “각 방마다 뚜렷하게 다른 개성을 지니면서도, 한 뿌리에서 나온 듯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라고 설명하는데, 드림 룸도 이런 원칙 아래 만들어진 여러 테마 공간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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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ry Gaylor

코워킹 공간은 커다란 파란 책상을 중심으로 구성했고, 예술가용 출입구와 공공 출입구를 분리해 서로 다른 이용자의 동선을 나눴다. 공간의 시각적 정체성은 런던 기반 그래픽 스튜디오 유로파(Europa)와 협업해 완성했다. 에나멜 사인, 패치워크 커튼, 색을 입힌 아티스트 전용 출입문 등을 새로 만들었는데, 각 요소는 이 건물이 지닌 역사적 형태와 옛 서체에서 영감을 받았다. 프로젝트는 3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완성됐다. 클라이언트가 실제로 공간을 써보며 다음 단계를 조정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앞으로 자금이 더 확보되면, 도서관과 대학 건물을 잇는 통로를 유리 카페로 만들 계획도 있다.


마을 출신 인물의 이름을 딴, 여관이었던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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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lex Shoots Buildings

체코 체르베니 코스텔레츠의 도서관은 이 마을 출신 인물 브르제티슬라프 카프카(1891~1967)의 이름을 땄다. 조각가이자 최면술사, 심리학 연구자로 활동하며 체코 초심리학의 창시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그는, 마을에 자신의 이름을 딴 거리와 도서관을 남길 만큼 지역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2022년, 체르베니 코스텔레츠 시는 낡은 집기를 교체할 목적으로 도서관 리노베이션을 맡겼다. 설계를 맡은 파펀데클 아키텍츠(Papundekl Architects)가 검토해 보니, 집기 교체만으로는 부족해 단열 공사를 포함한 전면 리노베이션이 필요하다는 게 드러났다. 도서관이 자리한 건물은 원래 오래된 여관이었던 터라, 공간 구조 자체에 제약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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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펀데클 아키텍츠는 옛 여관 특유의 불규칙한 공간 배치를 억지로 바꾸려 하지 않고, 기존 구조 안에 새로운 ‘방 안의 방’을 짜 넣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체르베니 코스텔레츠 시청 소속 건축가 루카시 엘(Lukáš Ehl)은 “브르제티슬라프 카프카 도서관은 체르베니 코스텔레츠에서 100년 넘게 중요한 사회적 역할을 해왔다”라고 말한다. 도서관 측은 생동감 있는 문화·창작 센터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전면 리노베이션을 결정했다. 텍스타일 천장 작업은 지역 아티스트 린다 레테로바(Linda Retterová)가 지역 예술 학교 아이들과 함께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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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로의 색채는 마을 이름 체르베니 코스텔레츠(‘붉은’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에서 착안한 핑크·레드 계열로 정했고, 여기에 스테인리스 스틸 디테일을 더해 공공기관다운 절제된 격식을 살렸다. 벽면에는 회색 붙박이 수납장을 배치해 배경처럼 스며들게 했다. 공간 중앙에는 바퀴 달린 빨간 이동식 가구를 뒀다. 이러한 이동식 가구들은 배치하기가 자유로워, 필요에 따라 도서관을 강연장이나 워크숍 공간으로 손쉽게 바꿀 수 있다. 아동 열람실 벽에는 작은 구멍이 촘촘히 뚫린 페그 보드를 달아, 아이들이 고리나 선반을 자유롭게 꽂아가며 창의적으로 놀 수 있는 놀이 공간을 만들었다. 이 열람실 천장은 지역 아티스트 린다 레테로바(Linda Retterová)가 지역 예술 학교 아이들과 함께 만든 직물 장식으로 덮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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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래더와 카프카 도서관은 서로 정반대 방향에서 출발했지만, 결국 지향점은 같았다. 낡은 건물의 흔적을 지우지 않으면서 지역 공동체가 실제로 쓸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 하나는 도서관에서 다른 용도의 공간으로, 다른 하나는 전혀 다른 용도에서 도서관으로 바뀌었다. 오래된 건물이라고 해서 무조건 헐고 새로 지어야 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두 도시가 각자의 방식으로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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