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tor+] 구오듀오: 소재와 공법으로 디자인의 새로운 재미를 찾다

맹유민·이화찬 구오듀오 디자이너

구오듀오(KUO DUO)는 소재와 공법을 깊숙이 파고들며 사물의 존재 이유를 새롭게 정의한다. 기술적 한계라는 제약 속에서 창의적인 해답을 건져 올리는 이들의 작업 방식은 독보적인 결을 지닌다. 국경과 스케일을 넘나들며 시대를 연결하는 이들의 창작 여정을 들여다보았다.

[Creator+] 구오듀오: 소재와 공법으로 디자인의 새로운 재미를 찾다

editor’s note

1995년 출생 산업 디자이너 듀오. 구오듀오(맹유민, 이화찬)는 소재와 공법을 셰프의 ‘요리 재료’에 비유합니다. 이들은 제조 공정의 논리를 먼저 들여다보며 기술적 한계라는 제약 속에서 가장 창의적인 해답을 건져 올리는 집요한 셰프인 셈이죠. 최근 새롭게 단장한 서울 중구 ‘미래빌딩’에서 열리는 전시 〈STEAM IN BETWEEN〉은 이러한 구오듀오만의 디자인 문법을 선명히 보여줍니다. 해외에서도 이들의 여정은 현재진행형인데요. 도쿄, 밀라노, 그리고 코펜하겐까지. 국경과 스케일을 사뿐히 넘나들며 시대를 연결하는 두 디자이너의 여정을 들여다봤습니다.

PLUS 1. 구오듀오가 전시를 고집하는 이유

최근 재단장한 미래빌딩에서 오는 6월 14일까지 전시 〈STEAM IN BETWEEN〉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오사카 빈티지 원단 회사 ‘유게 패브릭 팜(Yuge Fabric Farm)’과의 협업이 특히 눈길을 끌어요. 꽤 오래전부터 전시를 준비하셨다고요.

이화찬(이하 이). 작년부터 준비해 온 프로젝트예요. ‘유게 패브릭 팜(Yuge Fabric Farm)’은 일본 오사카에서 ‘에센셜 스토어’라는 큰 빈티지 숍을 운영하는 회사인데요. 호텔 스타일링 등 다양한 사업을 하시는데, 그중 하나가 일본 각지 창고에 잠들어 있는 새것 같은 데드스톡 원단을 수집하는 일이에요. 그간 주로 패션 브랜드와 협업해 왔는데, 오사카에서 저희가 그 원단들을 처음 봤을 때 과거 부티크 호텔과 같은 향수가 나더라고요. 저희는 라이프스타일 전반을 다루니까, 이 원단들을 사물과 공간을 엮어 한국에 소개하면 좋겠다고 제안했어요.

맹유민(이하 맹). 사실 처음에는 이렇게까지 프로젝트를 키울 생각이 없었어요. 그날이 저희 오사카 일정 마지막 날이라 공항 가기 전에 정말 잠깐 짬이 나서 가볍게 인사나 나누자는 마음으로 유게 대표님을 만나 뵀었죠. 그런데 사람 사이에는 케미(Chemie)라는게 있잖아요? 처음 만난 자리였지만 서로 생각하고 있는 각자의 아이디어나 비전이 너무나 잘 통하는 거예요. 순식간에 대화에 불이 붙은 거죠.

‘미래빌딩’이라는 장소, 그리고 ‘전시’라는 보여주기 방식을 선택한 이유도 궁금한데요.

이. 마침, 미래빌딩 측에서도 재단장을 준비 중이셔서 타이밍이 잘 맞았어요. 공간에 가보시면 한옥의 서까래처럼 노출된 콘크리트 보 구조가 아주 매력적이고 한국적인 건축미를 풍기는데요. 웅장한 건축 골조, 일본의 빈티지 패브릭 병풍, 그리고 그 앞에 놓인 구오듀오의 아카이브 제품이 모여 삼박자의 레이어를 이룹니다. 이 세 가지 요소가 현장에서 부딪치며 만들어내는 묘한 신(Scene)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맹. 전시 기획 목적이 원단의 가능성을 라이프스타일 개념으로 집에서도 쉽게 대입해 볼 수 있도록 상상력을 열어주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손바닥만 한 작은 스와치1 대신, 원단 자체를 거대한 ‘빅 스와치’ 형태로 병풍처럼 제작해 공간에 연출했죠.

놓치지 말아야 할 전시 포인트가 있다면요?

맹/이. 관객들이 전시장에 오셔서 단순히 ‘원단으로 병풍을 만들었구나’에 그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이 빅 스와치들을 보면서 ‘아, 저 원단으로 내 집의 소파를 입힐 수도 있겠구나’, ‘옷처럼 두를 수도 있겠구나’ 하며 일상 속 라이프스타일 개념으로 원단의 무궁무진한 활용성을 상상해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구오듀오는 유독 전시 활동에 적극적이네요.

이. 의도적으로 전시를 고집하는 건 아니에요. 다만 저희 같은 산업 디자인 스튜디오는 보통 클라이언트 잡이 기본 비즈니스 모델이잖아요. 그것 외에 저희 스스로 표현하고 도전하며 배울 수 있는 또 다른 창구가 필요했고, 대중이나 업계 사람들과 가장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채널이 자연스럽게 전시가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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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이딸 프로젝트(EETAL Project)와 함께 진행한 전시 <HIKOU Collection>. 작년 9월 도쿄에서 선보인 전시는 지난 2026년 3월 서울에서도 이어졌다.

맹. 일반적인 제품 개발 프로젝트는 오차 없이 정확한 도면을 바탕으로 완벽하게 양산해야 하잖아요. 반면 전시는 현장에서 설치하면서 즉흥 연주를 하듯 계획을 바꾸고 의견을 내는 맛이 있어요. 클라이언트 잡을 할 때 사용하지 않던 머리나 감정을 탁 깨워주는 상호보완적인 매력이 있죠.

지난 4월, 세계 최대 디자인 페스티벌 중 하나인 〈밀라노 디자인 위크(Milan Design Week)〉 에도 참여하셨는데요. 밀라노에서의 전시가 처음은 아니더군요.

이. 맞아요, 이번이 세 번째 밀라노 디자인 위크 참여였어요. 처음은 2022년에 프로토타입 위주의 그룹전으로 이름을 알리기 위해 나갔었고, 두 번째는 단독으로 저희의 색깔을 온전히 보여주는 개인전을 했어요. 앞선 두 번의 전시가 구오듀오라는 스튜디오의 존재감과 실험적인 성향을 선언하는 자리였다면, 지난 4월에 치른 세 번째 전시는 조금 더 성숙한 관점으로 접근했습니다. 단순히 전시용 오브제에 그치지 않고, 전시 이후에도 실제 양산과 판매로 연결되어 결실을 볼 수 있는 제품을 선보이고 싶었어요. 그래서 한국의 수저 브랜드인 ‘호랑(HORANG)’과 협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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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오듀오는 지난 4월 <밀라노 디자인 위크>간에 열린 그룹전 <CHOPSTICKS>에 참여했다.
동아시아의 식문화를 풀어내는 전시였다고 들었습니다. 구오듀오만의 해석 방식도 궁금하네요.

맹. 조사해 보니 한중일 삼국이 비슷하면서도 수저 문화가 정말 다르더라고요. 일본은 그릇을 들고 음식을 먹지만, 한국은 그릇을 내려놓고 국이나 밥을 숟가락으로 떠먹죠. 따라서 음식을 입안에 다 넣어야 해서 형태가 납작하고 넓은 특징을 가집니다. 반찬 문화라 콩나물 같은 걸 집기 위해 납작한 스테인리스를 쓰는 것도 고유의 문화죠.

. 우리는 평소에 ‘젓가락 사러 가자’고 하지 않고 늘 한 쌍으로 묶어 ‘수저’라고 부르잖아요. 이 자체가 한국인의 식문화이자 정체성이라 생각했어요. 과거 조선시대 약수저 끝에 달리던 물방울 장식에서 영감을 얻어, 과거의 포인트와 구오듀오의 현대적인 셰입을 연결하는 수저 컬렉션 ‘선(SEON)’을 디자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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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오듀오 x 호랑(HORANG)이 함께 선보인 수저 컬렉션 ‘선(SEON)’
기억에 남는 피드백이 있었다면요?

. 현장에서 관객분들이 실제로 구매 요청을 정말 많이 해주셨어요. 밀라노 디자인 위크 가보시면 아시겠지만, 대다수 전시가 프로토타입이거나 사이즈가 있는 가구가 많거든요. 그런데 저희는 작고 친근한 ‘수저’라는 일상 집기를 다뤘잖아요. 그래서 직관적으로 소유하고 싶어 하셨던 것 같아요.

PLUS 2. 스케일에 갇히지 않는 디자인 문법

오는 6월 10일부터 12일까지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3 Days of Design〉에도 참여하신다고요. 

맹. 이번 코펜하겐 무대는 저희에게 또 다른 도전인데요. 앞서 서울과 도쿄를 오가며 선보였던 ‘HIKOU Collection’ 전시의 연장선으로 일본의 정밀 판금 가공 기업인 ‘이딸(EETAL)’과 다시 한번 손을 잡고 협업할 예정이에요. 디자이너로만 참여하지 않고, 전체적인 공간 기획과 크리에이티브 디렉션을 도맡아 진행하고 있어요. 저희가 맡은 전시장 장소가 코펜하겐 ‘뉘하운(Nyhavn)’이라는 운하 지역에 위치해 있거든요. 상징적이고 멋진 곳인데, 그 장소에서 ‘이딸 프로젝트(EETAL)’과 함께 구오듀오만의 시각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도록 준비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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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KOU Collection〉 전시 전경. 구오듀오는 서울과 도쿄에 이어 오는 6월 10일부터 12일까지 코펜하겐 〈3 Days of Design〉에 참가해 ‘HIKOU Collection’을 선보일 예정이다.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공간 기획과 크리에이티브 디렉션을 맡았다.
공간 기획이나 전시 디렉팅은 디자인과는 또 다른 일이잖아요. 준비하는 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이. 한국에서 원격으로 덴마크 현지 공간을 컨트롤해야 하니까 물리적인 조율이 쉽지 않았어요. 도면만 보면서 현장의 세부적인 상태나 동선을 예측해 판을 짜야 했거든요. 일본의 EETAL 팀, 그리고 현지 스태프들과 조율하는 커뮤니케이션 과정이 꽤 까다로웠습니다. 하지만 공간 디자인뿐만 아니라 전시의 콘셉트, 그래픽, 홍보 방식, 이벤트 기획까지 전반적으로 디렉팅하는 프로젝트라 제품 디자인 외에도 다양한 영역을 경험할 수 있어 즐겁게 임하고 있습니다. 

. 조율할 게 많아 까다롭긴 했지만 사실 저는 정말 재밌게 작업하고 있어요. 제가 평소에 쇼나 뮤지컬 같은 무대 연출을 보는 걸 워낙 좋아하거든요. 관객이 전시장 문을 열고 들어와서 어떤 동선으로 움직이고 어떤 시선으로 제품을 바라보게 만들지, 하나의 무대를 연출한다는 생각으로 신나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스케일의 범위를 정해놓지 않은 이유가 있나요?

맹. 저희가 특별히 스케일의 범위를 정해놓지 않았다기보다,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열려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제가 실무를 배웠던 SWNA의 이석우 대표님이나 대학 시절 교수님들께서 늘 강조하시던 말씀이 있어요. “산업디자이너는 이쑤시개부터 도시 건물까지 디자인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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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메종&오브제(Maison&Objet)〉 ‘라이징 탤런트 어워드’ 수상을 기념해 구오듀오가 선보인 공간 연출 전시 〈Room of KD〉. 단 하나의 방이라는 제한된 구조 안에서 오브제와 가구가 조화를 이루는 일상 공간을 제안했다.
하지만 디자인 영역이 넓어질수록 스튜디오의 정체성이 흐릿해지는 위험도 있잖아요.

. 정체성은 다루는 대상의 크기가 아니라, 그걸 대하는 디자이너의 ‘기준’에서 나온다고 봐요. 형태나 스타일링만 쫓다 보면 제품과 공간 사이에서 정체성이 흔들릴 수 있겠죠. 하지만 저희는 각 프로젝트가 놓인 문화적 맥락과 서사, 소재와 구조의 물성, 그리고 생산 과정 속에 존재하는 제약과 가능성을 함께 관찰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저희만의 새로운 형태와 해법을 발견하고자 하죠. 문제를 해결하는 구오듀오만의 문법이 확고하므로 스케일이 바뀐다고 해서 저희 색깔이 흐려지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이야기를 듣다 보니 구오듀오의 시작도 궁금하네요. 특유의 소재와 공법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태도는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과 동기 시절부터 공유했던 성향일까요?

. 학과 안에 제품, 운송, 공간 세 가지 전공 선택지가 있었는데 저희 둘 다 제품을 선택했어요. 그 안에서도 겉모습보다는 소재의 물성이나 제조 공정을 파고드는 걸 유독 좋아했죠. 그때부터 은연중에 서로 코드가 잘 맞았던 것 같아요.

맹. 다만 학생 때는 아무래도 예쁜 형태를 만드는 데 눈이 먼저 가기 마련이잖아요? (웃음) 그러다 졸업 후 각자 실무 전선에서 치열하게 깨지면서 시야가 완전히 넓어졌어요. 소재와 공정을 모르면 진짜 좋은 제품이 나올 수 없다는 본질을 배운 거죠. 그때의 경험들이 쌓여 현재의 구오듀오가 됐다고 생각해요.

졸업 후 이화찬 디자이너는 일본과 스웨덴에서, 맹유민 디자이너는 덴마크와 서울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죠.

이. 저는 일본의 ‘시게키 후지시로 스튜디오’와 스웨덴 ‘폼 어스 위드 러브’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는데요. 두 곳의 성향과 규모가 극과 극이라고 할 정도로 달랐어요. 일본은 도제식에 가까울 정도로 소수 인원이 긴밀하게 움직이는 구조라 디자이너의 집요함과 장인 정신, 깊이 있는 공예성을 몸소 배울 수 있었고요. 반면 스웨덴은 철저히 시스템화된 조직 안에서 디자인을 합리적인 비즈니스와 대량 생산 관점으로 접근했죠. 모든 프로젝트가 철저하게 팀 단위로 굴러가다 보니, 내가 맡은 역할과 영역만 확실하게 책임지면 되는 구조였어요. 디자이너 개인이 아닌 철저한 ‘팀 시스템’으로 움직인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죠.

맹. 저는 서울의 ‘SWNA’와 덴마크 ‘세실리에 만즈 스튜디오’에서 일했어요. 특히 세실리에 만즈 스튜디오가 기억에 남는데 디자인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방식의 리서치보다 디자이너 본인의 일상과 라이프스타일을 관찰하면서 ‘내가 진짜 쓰고 싶고 좋아하는 것’에서부터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나가더라고요. 예를 들면 주말에 아들과 낚시를 다녀오며 주워 온 낙엽을 보고 디자인을 시작하는 식인 거죠.

이때의 경험으로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맹. 오히려 디자인 외적으로 라이프스타일과 삶을 보는 관점을 많이 바꾸어 놓았죠. 몇 살에는 무엇을 해야 한다는 사회적 풍토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확신을 얻었고, 짧은 업무 시간 동안 효율적으로 일한 뒤 가족과 시간을 보내며 리프레시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죠. 식습관도 완전히 달라졌어요. 현지인들처럼 딱딱한 빵에 생재료를 얹어 삼삼하게 먹기 시작했죠. 처음엔 어색했지만, 몸 상태가 좋아지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지금도 자극적이지 않은 삼삼한 맛을 즐길 만큼 입맛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PLUS 3. 소재와 공법을 다듬는 디자이너 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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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오듀오라는 이름은 1995년 출생 산업디자이너 듀오라는 뜻을 담았다. 이화찬 디자이너(왼쪽)와 맹유민 디자이너(오른쪽)
소재와 공법을 다루는 산업 디자인만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맹/이. 제품 디자인에서 형태만 바꾸는 건 한계가 있어요. 하지만 제품의 제조 방식과 소재가 지닌 가능성을 집요하게 들여다보다 보면, 디자인의 단서가 자연스럽게 드러나기도 합니다. 저희가 공장 견학을 중요시하는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죠. 제조 과정 자체를 디자인의 시작점으로 삼고, 그 안에서 소재가 가진 날 것의 매력을 끌어낼 때가 가장 짜릿한 순간이죠.

“소재와 공법은 디자이너에게 셰프의 요리 재료와도 같아요. 어떤 소재를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매번 새로운 레시피가 탄생하니까요.”

디자인을 지속 가능하게 이끄는 원동력도 궁금해요.

맹. 크게 두 가지예요. 첫 번째는 내가 이 일을 진짜 좋아한다는 사실 그 자체이고, 두 번째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나에게 의뢰하거나 관계된 사람들이 좋아해 줄 때 느끼는 감정이에요. 우리가 물건을 구매할 때의 경험에 따라 그곳을 다시 찾고 싶어지는 것처럼, 저희가 하는 일을 다음에 또 찾고 싶고 또 같이 일하고 싶은 팀이 되도록 신경 쓰는 과정에서 큰 보람과 만족감을 얻습니다. 그게 다음 프로젝트를 더 잘하고 싶게 만드는 원동력이 돼요. 정말 힘들 때는 치킨도 먹고 스튜디오 근처의 중랑천을 산책하거나 강을 바라보면서 풀기도 하고요.

. 산업 디자인의 묘미는 매번 뇌의 사용 영역이 달라진다는 점이고, 이게 일을 질리지 않게 만드는 원동력이 됩니다. 아주 작은 수저를 다루다가도 전시 디렉션이나 미술관 프로젝트처럼 큰 스케일을 마주하면 완전히 다른 영역의 뇌를 쓰게 되거든요. 하루는 되게 큰 생각을 하고, 하루는 되게 작은 생각을 하니까 질릴 틈이 없죠.

말씀처럼 여러 프로젝트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 중일 텐데요. 그만큼 매니지먼트 능력도 중요하겠어요.

맹. 대학 시절 교수님께서 여러 클라이언트를 만날 때 뇌를 필요한 곳으로 전환하는 “온·오프(On-Off)를 잘하는 디자이너가 되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능력이 실무에서 정말 뼈저리게 필요하다는 걸 체감하고 있어요.

이. 프로젝트마다 요구되는 스케일과 다루는 대상이 완전히 달라요. 매니지먼트가 단순히 일정을 조율하는 것을 넘어 저희의 생각과 에너지를 분배하는 핵심 능력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맹유민 디자이너가 전체적인 숲을 구획하고 타임라인이나 예산 같은 초기 기틀을 세팅하는 플래닝 역할을 주로 맡고 있어요.

맹. 제가 조금 더 정리하고 계획을 짜서 틀을 갖춘 뒤 시작하는 매니지먼트 성향이 강한 편이거든요. 둘 다 INTJ이지만 제가 ‘J’ 성향이 더 확실해서(웃음), 프로젝트가 결정되면 첫 단의 플래닝을 잡아 이화찬 디자이너가 더 편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셋업을 해둡니다. 다만 지금은 동시에 돌아가는 프로젝트가 다양해지다 보니 무 자르듯 역할을 나누기보다, 각자 더 잘 이끌 수 있는 프로젝트의 리드를 정해 소통을 전담하고 한 명이 서포트하는 방식으로 균형을 맞춰가고 있습니다.

그간 다양한 제조 업체와 함께 일해왔어요. 구오듀오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협업’이란 어떤 모습일까요?

. 내 생각에 공감해 주고, 또 그들의 생각이나 니즈를 내가 공감해서 같이 내 일처럼 풀어나가려면 사람 대 사람의 연결과 케미스트리가 정말 중요하더라고요. 특히 전시는 단기적으로 보여주고 끝나지만, 양산 제품은 출시까지의 긴 과정에서 제품에 정이 계속 들어요. ‘얘가 정말 잘 태어났으면 좋겠다.’ 하는 걱정과 노파심을 파트너와 함께 공유하면서, 우리가 무언가를 만들고 디자인하는 걸 참 좋아해서 이 일을 하고 있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결국에 디자인은 사람이 하는 일이잖아요. 수학 공식처럼 ‘1+ 1’처럼 정답이 있는 분야는 아니니까요.”

. 모두가 과정과 결과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관계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봐요. 저희가 디자인을 제안했을 때 클라이언트가 좋아해 주실 때도 행복하고, 공장에서 프로토타이핑을 거쳐 원하는 형상이 만들어졌다고 저희한테 신나서 문자를 보내주실 때 순수한 기쁨을 느껴요. 물론 그사이에 힘든 과정이 있겠지만, 제품이 시장에 나가 대중에게 좋은 피드백을 얻기까지 모든 단계에서 파트너와 함께 행복감을 느끼는 협업이 저희가 지향하는 이상향입니다.

활동이 활발해질수록 제안도 많아질 텐데요. 수용하기 어려운 일은 또 거절해야 하잖아요. 그만큼 거절을 잘하는 것도 중요할 테고요.

맹/이. 스튜디오의 정체성은 다루는 대상의 크기나 종류가 아니라 그걸 대하는 디자이너의 ‘기준’에서 나온다고 봐요. 저희는 디자인이 망망대해에서 새로운 보물을 찾아내는 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주어진 조건과 제약 안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프로젝트 제안을 검토할 때도 명확한 브리프와 요구사항, 그리고 함께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잘 설정되어 있는지를 중요하게 보는 편이에요. 그런 단단한 틀 안에서 오히려 과정 중에 예상치 못한 시너지와 새로운 결과물이 만들어진다고 믿고 있습니다.

PLUS 4. 시장과 취향, 그 사이에서 균형을 찾다

양산 제품을 디자인할 때, 소비자가 ‘진짜 사고 싶다’라는 마음이 들도록하는 구오듀오만의 전략도 궁금한데요. 예측하기 힘든 시장성과 디자이너의 취향 사이에서 어떻게 중심을 잡으세요?

맹. 대학 시절부터 교수님께 가장 많이 들었던 피드백이 “사고 싶은 제품일까?”였어요. 그 질문을 던지며 스스로 객관적인 소비자가 되어 철저하게 바라보려고 해요. 그러면 걷어내야 할 부분과 더 정제해야 할 디테일이 눈에 보이거든요. 정확히 어떤 요소 때문에 매력을 느끼고 구매하게 될지 100% 예측할 수는 없지만,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덴마크에서 일할 때 한 디자이너분도 “나는 내가 가지고 싶은 걸 디자인한다”라며 프로토타입이 나오면 직접 집에 가져가 테스트하고 수정하시더라고요. 결국 디자이너의 테이스트가 녹아들어야 매력적인 제품이 나오지만, 그렇다고 고집만 부릴 수는 없죠. 저희가 디자이너의 관점으로 해석한 결과물을 제안하면, 협력하는 제조 기업이나 브랜드에서 마켓과 경영적 관점의 피드백을 주세요. 그 사이에서 가장 이상적인 ‘미드 포인트(Mid-point)’를 찾아가는 과정이 곧 전략이 됩니다.

클라이언트와의 접점을 찾기 이전에 내부에서도 서로 시각이 다를 때도 있을 텐데요. 그럴 때는 어떻게 조율하나요?

이. 다른 경험을 해왔으니, 프로젝트를 바라보는 방식도 자연스럽게 다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프로젝트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성과 가능성을 직관적이고 넓게 그려보는 타입이라면 맹유민 디자이너는 전체 구조와 흐름, 맥락을 정리하며 균형을 잡는 데 강해요. 하지만 중요한 건 각자의 취향을 주장하는 게 아니라, ‘왜 이 선택이 필요한지’ 기준을 계속 공유하는 일입니다. 프로젝트마다 적절한 해법을 만들어내는 게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때로는 서로 다른 시각이 결과를 더 입체적이고 균형감 있게 해주는 경우도 많아요.

프로젝트의 론칭부터 완성까지 수많은 과정이 있잖아요. 그중에서 구오듀오가 ‘결정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단계’도 궁금합니다.

. 아무래도 첫 단추와 마지막 단추가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클라이언트가 주신 브리프를 해석해 방향을 잡는 게 첫 단추라면, 그간의 프로세스를 농축해 세상에 내놓는 론칭이 마지막 단추인데요. 저희는 제품 양산 팔로우업뿐만 아니라 마지막 론칭 방식까지 클라이언트와 함께 고민하려고 해요. 어떻게 보여주느냐에 따라 제품의 인상이 엄청 패셔너블하게 보일 수도, 아주 데일리하게 느껴질 수도 있거든요. 한 끗 차이로 인상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에 마지막 단추도 첫 단추만큼 중요하게 챙깁니다.

“프로젝트 중간에 치열하게 달리다 보면 무조건 길을 잃는 순간이 오잖아요. 그때 유일하게 길을 찾아주는 나침반이 바로 ‘첫 단추’예요.”

: 작업할 때 늘 “하나의 메시지만 전달하자”고 이야기하는데, 욕심이 생겨 두 문장, 세 문장으로 길어지면 아이디어를 처음부터 다시 정리해요. 클라이언트와 소비자에게 딱 한 문장으로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기틀을 첫 단추에 잘 잡아두면, 중간에 어지러워졌을 때 그 문장에 부합하느냐 아니냐로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또 저희 일이 출시와 함께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진 촬영, 영상, 비주얼 콘텐츠 디렉션까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최근에 다녀온 곳 중 멋진 전시나 독특한 사진 앵글이 있으면 클라이언트에게 “이런 무드는 어떠세요?” 하고 먼저 아이디어를 던지기도 해요. 마지막 순간까지 도움을 줄 수 있는 방향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PLUS LIST

구오듀오가 말하는 영감의 원천 3

  • 산책

구오듀오에게 산책은 단순히 머리를 식히는 휴식을 넘어, 일상 속 사소한 존재들을 관찰하고 발견하는 능동적인 행위다. 디자이너 듀오이자 부부이기도 한 이들은 저녁 늦은 시간까지 산책을 즐기곤 한다. 복잡한 생각으로 머리가 무거울 때 산책을 다녀오면 다음 날 프로젝트를 마주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낼 때 뇌의 컨디션과 몰입도가 좋다고 입을 모은다.

  • 샬롯 페리앙

가구라는 작은 일상 집기부터 주거 공간, 나아가 인간의 라이프스타일 전체를 건축적 구조 안에 영리하게 녹여냈던 20세기 거장 디자이너다. “숟가락부터 공간까지 디자인할 수 있어야 한다”는 유연한 관점을 지향하는 이화찬 디자이너는 최근 샬롯 페리앙의 생애를 다룬 책을 읽고 있다. 소재의 물성을 비즈니스 논리와 장인 정신 사이에서 균형감 있게 풀어낸 그녀의 자취를 보며 구오듀오만의 명확한 기준을 다듬어 나가는데 도움이 된다고.

  • 플레이리스트

맹유민 디자이너는 학창 시절 뮤지컬을 처음 봤을 때 느낀 통합 예술의 전율을 여전히 기억한다. 음악과 공간이 입체적으로 맞물리는 무대 연출은 지금도 그녀가 품고 있는 오랜 로망이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만드는 취미도 이와 맞닿아 있다. 마음에 드는 곡을 발견하면 앨범 전체를 찾아 듣는데, 프로듀서가 설계한 앨범의 플로우 역시 하나의 거대한 디자인이라 믿기 때문이다. 차트 밖 숨은 곡들의 레이어를 섬세하게 찾아내 혼자만의 리스트에 담아내는 과정은 복잡한 일상 속 감각을 충전하는 가장 좋아하는 영감의 원천이다.

TIPPING POINT

구오듀오를 움직이는 힘은 ‘정답이 없는 판’을 향한 집요함이다. 스무 살 대학 동기로 만나 세계 각지에서 내공을 쌓은 두 디자이너는 이제 소재와 공법을 비틀어 자신들만의 카테고리를 개척하고 있다. 일상을 세심히 관찰하고 본질을 한 문장으로 꿰뚫는 명쾌한 시선은, 작은 수저 디자인부터 거대한 전시 공간 디렉팅까지 경계 없이 넘나들며 스케일을 확장해 나가는 단단한 뿌리가 됐다.


  1. *섬유나 의류 디자인에서 원단의 질감, 색상, 패턴 등을 미리 확인하기 위해 잘라낸 작은 크기의 견본 조각을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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