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손끝에서 피어난 가치를 말하다, 2026 런던 크래프트 위크

손이 만들어낸 것들에 대한 갈망

올해 12회를 맞은 런던 크래프트 위크가 지난 5월 11일부터 17일까지 개최되었다. 세 가지 테마를 바탕으로 AI 시대에 인간 손길에 대한 갈망을 조망했다. 35개국 장인들이 참여했으며, 소더비와 JW 앤더슨이 후원해 행사의 위상을 높였다.

인간의 손끝에서 피어난 가치를 말하다, 2026 런던 크래프트 위크

올해로 12회를 맞은 런던 크래프트 위크(이하 LCW)가 5월 11일부터 17일까지 런던 전역 150개 이상의 장소에서 펼쳐졌다. 올해 LCW는 텍스타일, 유리 공예, 희귀·멸종위기 기법을 3대 테마로 내세우며, AI가 일상을 파고드는 시대에도 인간의 손이 만들어낸 것들에 대한 갈망이 더욱 깊어지고 있음을 조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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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어드업4(FiredUp4)와 함께 진행한 시크릿 세라믹스(Secret Ceramics)

35개국, 71개 분야의 장인과 디자이너가 한자리에 모인 이번 행사는 소더비(Sotheby’s)와 JW 앤더슨(JW Anderson)이 새롭게 메인 스폰서로 합류하며 한층 도약했다.

AI의 발전과 전 세계적인 불안정 속에서, 우리는 어쩌면 인간의 창의성과 교감을 더욱 소중히 여기게 되는지도 모릅니다.

가이 샐터(Guy Salter), 런던 크래프트 위크 창립자

소더비(Sotheby’s)의 공공 프로그램, 크래프티드

올해 처음 스폰서로 합류한 소더비는 본드 스트리트 갤러리에서 대규모 공공 프로그램 크래프티드(Crafted)를 진행했다. 왕립자수학교(Royal School of Needlework) 워크숍, 세계적 장인들의 시연, 자폐 예술가 단체 인투아트(Intoart)의 전시, 갤러리 아트페어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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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afted at Sotheby’s London © Tristan Few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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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afted at Sotheby’s London © Tristan Fewings

화제를 모은 것은 자선단체 파이어드업4(FiredUp4)와 함께 진행한 ‘시크릿 세라믹스(Secret Ceramics)’였다. 기성 및 신진 도예가 100명의 작품을 익명으로 출품해 동일한 가격에 판매하는 이 기획은 구매하기 전까지 누구의 작품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 묘미다. 올해는 처음으로 루시 리(Lucie Rie)를 비롯한 영국 주요 도예가 12명의 작품을 별도로 경매에 올리는 ‘큐레이티드 세라믹스(Curated Ceramics)’도 함께 진행됐다. 판매 수익금은 어려운 환경의 영국 청소년들이 도자기 공예를 통해 삶의 변화를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 파이어드업4에 기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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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ob van der Beugel, Secret Ceramics

핌리코 로드 시리즈(The Pimlico Road Series)

LCW의 인기 프로그램인 핌리코 로드 시리즈도 돌아왔다. 첼시와 빅토리아 사이에 있는 이 거리는 런던에서 가장 세련된 인테리어, 앤티크, 디자인 숍이 모여 있는 곳으로, 하이엔드 브랜드와 영국 수공예 전통이 공존하는 독특한 정체성을 지닌다. 20개 브랜드가 참여했으며, 그중 가장 큰 화제는 단연 ‘JW 앤더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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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W Anderson

LCW의 메인 스폰서로 처음 합류한 JW 앤더슨은 새롭게 오픈한 매장에서 전시와 라이브 시연을 펼쳤다. 럭셔리 패션 브랜드들이 즐비한 본드 스트리트가 아닌, 앤티크와 디자인의 거리 핌리코 로드에 매장을 낸 것 자체가 공예를 향한 브랜드의 진심을 보여준다.

세계 어디에서 왔든, 인간이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에는 언제나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조나단 앤더슨(Jonathan Anderson), JW 앤더슨 창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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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x London

이 외에도 스웨덴 태피스트리 브랜드 마르타 모스-예테르스트룀(Märta Måås-Fjetterström AB)의 1919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아카이브 작품과 마스터 위버의 작업을 직접 공개한 니나 캠벨(Nina Campbell), 베트남 손 마이(Son Mai) 옻칠 기법을 소개한 더 래커 컴퍼니(The Lacquer Company), 그리고 65명 이상의 장인이 브론즈 주조와 밀랍 주조 등 헤리티지 기술로 작업하는 아틀리에를 개방한 콕스 런던(Cox London) 등이 눈길을 끌었다.

건축과 공예의 만남, 빌딩 크래프트(Building Crafts)

올해 LCW의 가장 눈에 띄는 변화 중 하나는 신설된 ‘빌딩 크래프츠(Building Crafts)’다. 건축과 공예의 접점을 본격적으로 조명한 프로그램으로 런던의 상징적인 헤리티지 건물을 무대로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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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lace of Westminster

세인트 폴 대성당(St Paul’s Cathedral)에서는 아직도 손으로 직접 조각되는 포틀랜드 스톤 작업을 볼 수 있는 보기 드문 기회가 마련됐고, 웨스트민스터 궁전(Palace of Westminster)에서는 영국 의회의 비하인드 씬 투어가 특별 진행됐다. 건축 사무소 모리스 앤 컴퍼니(Morris + Company)는 전시 <From The Quarter To The Mortar>를 통해 18세기 장인 공예부터 최첨단 건축 기술까지를 한눈에 보여줬다.

세계 공예 축제로 자리매김한 런던 크래프트 위크

올해 LCW는 마치 세계 공예 비엔날레를 방불케 했다. 이탈리아 대사관은 카사 이탈리아(Casa Italia)에서 전시 <Benfatto. Excellence in Craftsmanship between Art, Material and Time>을 통해 이탈리아 장인 정신의 정수를 선보였고, 프렌치 크래프트 컬렉티브(French Craft Collective)는 칼튼 하우스 테라스(Carlton House Terrace)에서 프랑스 장인들의 정교한 손기술을 소개했다. 특히 한국, 홍콩, 싱가포르가 각각 독립적인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아시아 공예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주목받는 아시아 공예, 그리고 한국

그중에서도 한국의 활약이 눈에 띄었다. 한국 현대 공예를 글로벌 무대에 소개해 온 솔루나 파인 크래프트(Soluna Fine Craft)는 세인트 조지 스트리트 갤러리(St George Street Gallery)에서 <Origin of Materials> 전시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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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una Fine Craft, Jongjin PARK, installaiton view photo ©SarahWeal

재료를 다루는 방식과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견뎌낸 시간 속에 작가의 삶과 태도가 담긴다는 시각 아래, 로에베 재단 공예상 파이널리스트 이교홍, 천우선, 최귀룡, 정다혜, 박종진 등 총 7명의 작가가 유리, 금속, 도자, 말총 등 각기 다른 재료로 한국 공예의 조형적 깊이를 보여주었다. 특히 박종진 작가는 LCW 기간 중인 5월 12일 <2026 로에베 재단 공예상> 수상자로 선정되며 더 주목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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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ki Kim, Courtesy the artist and KCC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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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ngseop Kim, Courtesy the artist and KCCUK

한국문화원(KCCUK)은 이천시와 협력해 <Icheon and Beyond: The Space Within Form> 전시를 선보였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도시 이천의 도자 전통을 탐구하는 이 전시는 그릇의 본질은 그것이 담는 빈 공간에 있다는 철학에서 출발하며, 이천 마스터 장인 21명과 현대 작가 6명 등 총 27명이 참여해 전통의 축적된 시간과 기술이 현대적 실험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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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afts on Peel, Hong Kong

홍콩의 자선재단 크래프츠 온 필(Crafts on Peel)은 로열 소사이어티 오브 스컬프터스(Royal Society of Sculptors)에서 <Creative Cross-Pollination: The Future of Crafts> 전시를 열었다. 광저우 자수, 금박, 필리그리, 대나무, 함석 공예 등 중국 헤리티지 공예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들로 구성된 이 전시는 모든 작품을 직접 만져볼 수 있는 인터랙티브 형식으로 진행되어 주목받았다. 싱가포르 국립유산위원회(National Heritage Board)는 올해 처음으로 참가해 도자, 라탄 위빙, 랜턴 메이킹 등 싱가포르 현대 공예 실천가들의 작품을 소개했다.

AI와 자동화가 일상 깊숙이 파고드는 지금, 런던 크래프트 위크가 던지는 메시지는 더욱 선명해진다. 인간의 손이 만들어낸 것들, 그 안에 담긴 시간과 기술과 이야기는 어떤 기술로도 대체할 수 없다는 것. 12년간 꾸준히 성장해온 LCW는 이제 단순한 공예 축제를 넘어 전 세계 공예 씬의 나침반 역할을 하고 있다.

런던 크래프트 위크(London Craft Week)

장소 런던 전역
웹사이트 홈페이지,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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