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있다면 종말도 없다, 제61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미술전 리뷰

비엔날레는 더 이상 세계를 재현하는 안전한 문화 이벤트가 아니라 현실 정치의 균열이 직접 침투한 장소처럼 보였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번 비엔날레는 예술이 세계 속에서 어떻게 ‘집’을 만들 수 있는가를 절실하게 질문한 자리이기도 했다.

집이 있다면 종말도 없다, 제61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미술전 리뷰

현실 정치의 균열이 침투한 장

2026년 베니스비엔날레 국제미술전은 비엔날레 역사상 가장 중요한 에디션 중 하나로 회고될 가능성이 크다. 역대 최초 아프리카 출신 여성 총감독 코요 쿠오Koyo Kouoh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이어진 큐레토리얼 리더십의 공백, 국제심사위원단의 러시아와 이스라엘에 대한 심사 거부 의향 발표와 이에 따른 총사퇴, 황금사자상의 관객 인기 투표 대체, 일부 국가관에서의 국가 차원의 검열과 정치적 개입까지. 개막 이전부터 이어진 초유의 사태들은 2026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역사적 퇴행을 비엔날레라는 무대 위에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듯했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체칠리아 알레마니Cecilia Alemani, 레슬리 로코Lesley Lokko, 아드리아노 페드로사Adriano Pedrosa가 연이어 예술과 건축의 공공성과 진보 가능성을 갱신하며 비엔날레의 존재 이유를 재확인해 왔기에, 올해 베니스비엔날레에 드리운 균열은 더욱 깊고 어둡게 느껴졌다. 해묵은 위기론을 넘어 비엔날레라는 제도 자체의 종말을 상상하게 만드는 순간이 이어졌다.

20260524040045 01
러시아관 앞에서 펼친 푸시라이엇과 페멘의 합동 시위. 사진 Pussy Riot ©Nikita Teryoshin

실제로 지난 5월 6일부터 8일까지 열린 프리뷰 기간 동안 자르디니는 세계의 갈등이 응축된 축소판처럼 보였다. 5월 6일 푸시 라이엇Pussy Riot과 국제 여성 인권 단체 페멘FEMEN은 러시아관 앞에서 합동 시위를 벌이며 “러시아는 살인하고, 비엔날레는 그것을 전시한다”고 외치며 러시아관의 퇴출을 요구했다. 이어 5월 8일에는 제노사이드에 반대하는 예술 동맹 ANGA(Art Not Genocide Alliance)의 주도로 이스라엘 참여를 규탄하는 대규모 예술 노동자 파업이 조직되어 한국관을 포함한 27개국 파빌리온이 문을 닫았다. 수천 명의 시위대는 아르세날레 진입을 시도하다 경찰과 충돌했다. 한편에서는 네오 러시아 양식의 신고전주의 건축물 앞에 우크라이나 국기 색의 연막탄이 터졌다. 다른 한편에서는 전쟁과 학살의 책임을 둘러싼 논쟁 속에서 국가관이 비호받거나 고립됐다. 비엔날레는 더 이상 세계를 재현하는 안전한 문화 이벤트가 아니라 현실 정치의 균열이 직접 침투한 장소처럼 보였다.

20260524040208 20260524 040207
이스라엘 참여를 규탄하는 파업에 동참한 벨기에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60524040714 20260524 040713
이스라엘 참여를 규탄하는 파업에 동참한 오스트리아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은 집을 만들 수 있는가?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번 비엔날레는 예술이 세계 속에서 어떻게 ‘집’을 만들 수 있는가를 절실하게 질문한 자리이기도 했다. 여기서 집은 있을 곳, 자리, 거주의 감각을 담아내는 장소이다. 우리는 집이 사라질 때 세계의 종말을 상상한다. 이번 비엔날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 것은 바로 그런 거주성의 문제였다. 코요 쿠오가 내건 ‘단조로In Minor Keys’라는 전시 주제는 거대한 선언이라기보다 예술이 놓이는 자리에서 생성되는 작은 소음과 희망의 웅얼거림에 가까웠다. 작년에 리노베이션을 위해 문을 닫았다가 재개장한 중앙관에서는 이런 목소리를 들려주는 작업들이 돋보였다. 전시 도입부에서 사당 역할을 하는 이사 삼브Issa Samb의 멀티미디어 설치는 예술과 장소의 만남이 영적 차원에 도달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그 옆에 놓인 베벌리 뷰캐넌Beverly Buchanan의 작업 역시아프리칸 아메리칸 공동체의 오두막과 거주 공간을 반복적으로 호출하며 결국 모든 것은 ‘집’의 문제로부터 시작됨을 상기시켰다. 참여 작가의 갑작스러운 타계로 애도의 장소가 되기도 했던 독일관은 동독 지역에 거주했던 작가들의 사적 리서치를 통해 국가주의적 건축을 해석과 교란의 장소로 다시 쓰고 있었다.

20260524040134 02
독일관 전시 〈Ruin〉 내부. 헨리케 나우만의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사진 Jens Ziehe

〈해방공간: 요새와 둥지〉

한국관에서 열린 전시 〈해방공간: 요새와 둥지〉는 위와 같이 비엔날레가 던진 질문의 또 다른 응답이다. 자르디니에 조성한 국가관들은 국가를 대표하는 예술의 집이다. 카타르관 건립 발표가 있기 전까지 지난 30년간 자르디니의 마지막 국가관이었던 한국관은 작은 규모와 복잡한 구조의 독특한 공간으로 평가받았다. 작년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에서 CAC가 기획한 〈두껍아,두껍아:집의 시간〉전은 이러한 한국관의 물리적 층위와 집으로서의 의미를 드러냈다. 이번 전시는 그 맥락 위에 ‘해방 공간’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특정한 시점과 장소가 지닌 상징적 의미를 더했다. 최빛나 예술감독과 최고은, 노혜리 두 작가는 한국관을 ‘끊임없이 형성되어 가는 국가의 체현’으로 보고 ‘요새와 둥지라는 양가적 상태를 넘어서는 기념비’로 제시한다.

20260524040844 20260524 040844
〈해방공간: 요새와 둥지〉 전이 열리고 있는 한국관. 사진 감동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삶을 긍정하고 세계를 만들어 가는 모든 자리

최고은의 ‘메르디앙’은 한국관에 잠재되어 있던 흐름과 동선을 드러낸다. 작가는 기존 건물 구조 일부를 연장한 파이프 설치를 통해 공간을 가로지르는 감각을 만들었다. 마치 건물에 침을 놓듯 오랫동안 막힌 구조(혈)를 다시 열어(뚫어) 한국관 내부에 숨어 있던 방향성과 이동의 감각을 가시화했다. 이는 설계자의 원래 의도를 복원하는 동시에 한국관에 잠재된 정동의 힘을 드러낸다. 반면 노혜리의 ‘베어링’은 한국관 내부의 움직임 자체를 재구성했다. 왁스를 입힌 수천 개의 원형 오간자는 빛을 은은하게 걸러내는 동시에 관람자가 공간의 중심이 아닌 가장자리를 따라 천천히 걷도록 유도했다. 절단된 구리 파이프가 건물의 구조적 논리를 드러낸다면, 손으로 엮은 오간자는 그 안에서 관람자의 몸과 움직임을 유연하게 감싸며 또 다른 거주의 감각을 만든다.

한편 노혜리의 반투명 구조물 주변에는 ‘스테이션’이라는 이름의 설치 작업이 놓였다. ‘스테이션’은 펠로우로 명명된 한강, 황예지, 김후주, 이랑, 크리스티앙 니얌페타Christian Nyampeta와의 협업으로 구성했다. 여기에는 작년 계엄령 선포를 비롯한 우리 사회의 단절과 투쟁의 순간이 응축되어 있다. 관람자는 ‘메르디앙’과 ‘베어링’이 만들어낸 한국관 내외부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거닐면서 펠로우의 이미지와 사진, 노랫말을 통해 국가의 존재 가능성과 공동의 실천에 대해 사유하게 된다. 특히 자르디니에서 한국관만이 가진 물리적 해방 공간이라 할 수 있는 옥상에서 흘러나오는 이랑의 노래가 강렬했다. 한국관 너머로 퍼져나가는 가사는 공동체와 주권, 그리고 행동의 역할을 재차 강조한다.

20260524041529 20260524 041528
펠로우로 명명된 한강, 황예지, 김후주, 이랑, 크리스티앙 니얌페타와의 협업으로 구성한 ‘스테이션’ 사진 감동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60524041819 20260524 041818
한국관 개막 퍼포먼스.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역사상 최초로 일본관과 함께 개막식 파티를 열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해방 공간이 일본 식민 지배에서 벗어난 1945년부터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 사이의 과도기를 뜻한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일본관과의 관계 설정이다. 전시 크레디트를 공동으로 쓰고,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역사상 최초로 개막식 파티를 함께 열었다. 최고은의 ‘메르디앙’ 일부는 일본관으로 이어지고, 반대로 일본관의 에이 아라카와 나시 Ei Arakawa-Nash의 ‘풀 아기, 달 아기Grass Babies, Moon Babies’ 작업 일부가 한국관 안으로 들어온다. 이는 단순한 협업의 제스처를 넘어 국가관 사이의 물리적·상징적 경계를 허물고 공유하는 것이다. 두 전시는 모두 국가관을 작품의 배경이 아니라 몸과 행위를 통해 작동하는 돌봄의 장소로 바꾸어놓았다.

20260524041738 20260524 041737
최고은, ‘Corea Pavilion – Bush – Giappone Pavilion’. 국경처럼 나뉜 일본관과 한국관 울타리 사이에 최고은 작가의 작업이 관통한다. 사진 감동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이번 베니스비엔날레는 세계의 균열과 퇴행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에디션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예술이 여전히 사람과 장소, 그리고 서로 다른 존재들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조직할 수 있는가를 묻는 자리이기도 했다. 〈해방공간: 요새와 둥지〉전은 한국관이라는 제한된 장소를 통해 그 가능성을 드러낸다. 한국관은 이번 비엔날레가 던진 질문, 예술은 어떻게 다시 세계의 ‘집’이 될 수 있는가에 이어 우리에게 집은 해방 공간이 될 수 있는지를 묻는다. 한국관 공식 웹사이트에 기획자가 쓴 대로 진정한 해방 공간이란 ‘삶을 긍정하고 세계를 만들어가는 모든 자리’일지도 모른다.

제61회 베니스비엔날레 주제전 〈단조로In Minor Keys〉
총감독
코요 쿠오
웹사이트 labiennale.org

제61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 〈해방공간: 요새와 둥지〉
기간
2026년 5월 9일~11월 22일
장소 이탈리아 베니스시 자르디니 한국관
주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감독 최빛나
참여 작가 노혜리, 최고은
펠로우 김후주, 이랑, 한강, 황예지, 크리스티앙 니얌페타
추진단 박유진, 마야 웨스트, 송혜인
웹사이트 korean-pavilion.or.kr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576호(2026.06)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매거진 보기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