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성과 예술성을 넘나드는 디자이너, 에스 데블린

세계적인 무대 디자이너이자 건축가인 '에스 데블린(Es Devlin)'에 대하여

2026년 8월 20일부터 2027년 1월 31일까지 진행되는 〈세 번째 시, 에스 데블린: 다시 집으로(3rd Poem, Es Devlin: Come Home Again)〉는 국내에서 처음 선보이는 에스 데블린의 개인전으로, 그녀의 예술 세계를 총체적으로 조망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수십 년에 걸쳐 독창적인 무대 언어를 구축해온 데블린의 모든 것을 만나볼 수 있는 전시 소식에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높은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대중성과 예술성을 넘나드는 디자이너, 에스 데블린

서울 북촌에 위치한 푸투라 서울(FUTURA SEOUL)은 시각예술을 비롯해 건축, 사운드, 기술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작업을 소개하는 예술 공간이다. 2024년 9월에 문을 연 이 공간은 매년 한차례 자체 기획 전시를 선보이며 동시대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해왔다. 그리고 세 번째로 개최되는 올해의 전시는 세계적인 무대 디자이너이자 건축가인 ‘에스 데블린(Es Devlin)’의 개인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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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푸투라 서울 홈페이지

2026년 8월 20일부터 2027년 1월 31일까지 진행되는 〈세 번째 시, 에스 데블린: 다시 집으로(3rd Poem, Es Devlin: Come Home Again)〉는 국내에서 처음 선보이는 에스 데블린의 개인전으로, 그녀의 예술 세계를 총체적으로 조망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무대를 하나의 세계로 창조해 내는 그녀의 작업처럼 이번 전시 역시 건축과 빛, 관람 동선, 관객의 움직임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몰입형 경험으로 구성될 예정이다. 수십 년에 걸쳐 독창적인 무대 언어를 구축해온 데블린의 모든 것을 만나볼 수 있는 전시 소식에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높은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에스 데블린, 무대의 경계를 확장한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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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에스 데블린 인스타그램 @esdevlin

1971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에스 데블린은 브리스틀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후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에서 미술 기초 과정을 수학했다. 학업을 이어가던 시절 데블린은 서커스 예술가인 빅토리아 채플린(Victoria Chaplin)과 그녀의 남편 장-바티스트 티에레(Jean-Baptiste Thierrée)가 설립한 서커스단 르 시르크 앵비지블(Le Cirque Invisible)의 소품 제작에 참여하며 무대 예술과 인연을 맺었다. 이를 계기로 무대 디자인 분야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였으며, 초기에는 서사극과 실험 오페라(Experimental Opera)를 중심으로 경력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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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에스 데블린 홈페이지

특히 전통적인 오페라 형식과 규범에서 벗어나 새로운 표현 방식을 탐구하는 실험 오페라는 훗날 데블린이 대형 콘서트와 설치 작업에서 선보인 조각적이고 몰입적인 공간 연출의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1998년 영국의 연출가 트레버 넌(Trevor Nunn)의 의뢰로 국립극장 무대 디자인을 맡으며 주목받기 시작했고, 2003년에는 밴드 와이어(Wire)와의 협업을 통해 콘서트 디자인 분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이어 2005년 카니예 웨스트의 투어 무대 디자인을 맡으며 대중음악계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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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에스 데블린 홈페이지

2012년 런던 올림픽 폐막식의 무대 디자인을 총괄한 데블린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개막식과 2022년 슈퍼볼 하프타임쇼까지 연이어 참여하며 세계적인 무대 디자이너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했다. 또한 테이트 모던, V&A 뮤지엄, 서펜타인 갤러리, 아트 바젤, 두바이 엑스포 등 주요 문화예술 기관과 국제적인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며, U2, 비욘세, 아델, 위켄드, 레이디 가가 등 세계적인 뮤지션들의 공연 무대를 설계하며 독보적인 감각을 선보였다. 최근에도 밀라노 디자인 위크, 마이애미 아트 위크, 오사카 엑스포 등 국제적인 무대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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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에스 데블린 홈페이지

데블린의 작업 영역은 트래펄가 광장, 링컨 센터 등의 야외 공공 조각 및 설치 작품부터 서펜타인 갤러리, 임페리얼 전쟁 박물관, 서머셋 하우스 등의 실내 공간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확장되어 있다. 그녀는 음악과 조명, 영상, 구조물을 유기적으로 결합해 무대 전체를 하나의 서사적 장치로 전환하는 독창적인 작업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이를 통해 관객이 작품의 일부가 되는 몰입적인 경험을 구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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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에스 데블린 홈페이지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에미상, 토니상, 올리비에상, 아이버 노벨로상(Ivor Novello Awards), MIT 유진 맥더멋 예술상(Eugene McDermott Award for the Arts) 등 권위 있는 국제상을 휩쓸었으며, 대영제국 훈장(CBE)을 수훈했다. 여기에 BBC가 선정한 ‘100인의 여성’에 이름을 올리며 동시대 문화예술계를 선도하는 창작자로 자리매김했다. 현재는 왕립 음악원과 왕립 예술 협회의 회원으로서 다양한 문화예술 기관과 협력을 통해 창작과 연구를 이어나가고 있다. 또한 옥스퍼드 대학교 객원 교수를 역임하며 후학 양성과 학술 활동에도 기여하고 있다.

에스 데블린의 인상적인 작업들

올림픽 폐막식, 슈퍼볼 하프타임 쇼, 팝스타의 투어 무대까지, 에스 데블린이 참여한 프로젝트들은 대규모이면서도 대중적인 성격을 지녔다. 그렇지만 그녀가 무조건 대중적인 작업만 진행한 것은 아니다. 순수예술과 공공 프로젝트 분야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며 동시대 예술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구축해왔다. 무엇보다 조각, 퍼포먼스, 음악, 드로잉, 회화, 언어, 빛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개인의 경험을 집단적 사유로 확장시키는 작업에 탁월한 역량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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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푸투라 서울 홈페이지

데블린은 2021년 두바이 세계 엑스포 영국관 설계에 세계박람회 역사상 최초로 여성 건축가로 참여하며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더욱 화제를 모은 것은 전시관 자체의 개념이었다. 데블린은 건물 외벽에 관람객이 입력한 단어를 기반으로 AI가 생성한 집단 시가 흐르도록 설계했다. 이는 2018년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 기간 동안 트래펄가 광장에 설치되었던 ‘사자에게 먹이를 주세요(Please Feed the Lions)’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었다. 당시 작품 역시 AI가 관객이 입력한 단어들을 조합해 하나의 시를 만들고 군중에게 들려주는 방식으로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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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에스 데블린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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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에스 데블린 홈페이지

데블린의 관심은 기술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녀는 예술을 통해 인간과 자연, 그리고 기억의 관계를 꾸준히 탐구해왔다. 대표작인 ‘다시 집으로(Come Home Again)’는 런던의 멸종 위기 생물 243종을 드로잉으로 기록하고, 지역 디아스포라 합창단의 목소리를 결합한 작품이다. 관람객은 지구상에서 사라져 가는 생물들의 이름을 배우고 기억하며, 노래를 통해 그 존재를 기리게 된다. 작품에는 런던 아프리카 가스펠 합창단, 남아프리카 문화 가스펠 합창단 등을 비롯한 다양한 공동체가 참여했으며, 코사어와 줄루어, 라틴어, 불가리아어, 아프리카 지역 방언 등 다채로운 언어가 사용되었다. 데블린은 이를 통해 생물 다양성의 위기뿐 아니라 언어와 문화의 다양성 또한 사라져 가고 있음을 함께 조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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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에스 데블린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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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에스 데블린 홈페이지

이 작품은 2023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스피어(Sphere)에서 새로운 형태로 재현되며 다시금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데블린은 록 밴드 U2와 협업해 네바다주 멸종 위기 생물로 구성된 거대한 디지털 성당 ‘네바다 아크(Nevada Ark)’ 을 선보였다. 18,000명의 관객이 합창하여 완성하는 이 작품은 네바다의 멸종 위기종을 기리는 집단적인 의식이자 기억의 공간이었다. 데블린은 사람들이 생물들의 이름을 하나씩 배우는 행위 자체가 상상 속에서 그들의 서식지를 보존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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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에스 데블린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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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에스 데블린 홈페이지

다양한 언어로 이루어지는 작업은 이후에도 꾸준히 이어졌다. 2022년 링컨 센터 플라자에서 설치된 회전 조형물 ‘당신의 목소리(Your Voices)’는 뉴욕에서 사용되는 700여 개 언어를 탐구한 작품이다. 데블린은 작품과 함께 줄루어, 세르비아어, 우크라이나어, 조지아어 등 다양한 언어로 이루어진 무료 공연을 진행하며 세계에서 사용되는 언어의 절반이 멸종 위기에 처해있다는 사실을 환기했다. 이 작품은 2024년 ‘회합(Congregation)’으로 이어지며 문화적 다양성과 공동체에 대한 작가의 철학을 더욱 확장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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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푸투라 서울 홈페이지

2021년 런던 디자인 비엔날레에서 공개된 ‘변화를 위한 숲(Forest For Change)’ 역시 데블린의 문제의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업이다. 당시 비엔날레 예술 감독이었던 데블린은 서머셋 하우스의 안뜰에 영국과 북유럽 지역에서 자라는 23종의 나무 400그루로 이루어진 숲을 조성했다. 숲의 중심에는 UN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가 자리했다. 이는 2030년까지 극심한 빈곤을 종식하고 불평등을 완화하며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세계 각국이 합의한 공동의 계획이다. 데블린은 숲이라는 공간을 통해 관람객들이 지구적 과제를 직접 경험하고 사유할 수 있도록 만들며, 디자인과 예술이 사회적 변화를 촉진하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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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푸투라 서울 홈페이지

최근 선보인 ‘우리의 도서관(Library of Us)’과 ‘빛의 도서관(Library of Light)’은 데블린이 오랫동안 탐구해온 기억과 공동체의 개념을 또 다른 방식으로 확장한 작업이다. 각각 마이애미와 밀라노에서 공개된 이 작품들은 작가가 삶의 영향을 받은 책들과 기증받은 도서들로 구성되었다. 관람객들은 작품 속에서 자유롭게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동시에 데블린이 직접 250권의 책에서 발췌한 문장을 낭독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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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푸투라 서울 홈페이지

매일 진행된 이 낭독 프로그램은 아르헨티나 소설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가 말했던 “나는 내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읽은 모든 책, 만난 모든 사람, 사랑했던 모든 것, 가본 모든 장소의 총합이다.”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이 작품을 통해 데블린에게 도서관은 수많은 기억과 경험, 그리고 타인의 삶이 교차하며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공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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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푸투라 서울 홈페이지

대중성과 예술성,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성취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지만, 데블린은 오랜 시간 동안 이를 증명해왔다. 그녀는 늘 수많은 사람을 끌어들이면서도 그들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작품을 만들어왔다. 그렇기에 그녀의 프로젝트가 전 세계의 이목을 사로잡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푸투라 서울에서 열리는 〈세 번째 시, 에스 데블린: 다시 집으로〉는 동시대 예술이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세계를 바라보게 하는지를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서사를 담은 몰입형 무대를 만들어온 데블린이 이번에는 어떤 공간과 이야기로 관람객을 맞이할지 많은 이들의 기대가 모이고 있다.

박민정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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