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산불로 전소된 인월사, 세계건축상을 받다
불교 철학을 현대 건축으로 풀어낸 윤경식 건축가의 인월사
2023년 강릉 산불로 전소된 후 건축가 윤경식의 설계로 재건된 인월사가 제53회 세계건축상(WA Awards) 대상을 받았다. 불교 경전과 화엄 사상에서 출발한 설계는 현대 건축의 언어로 사찰의 가능성을 다시 보여준다.

불교의 오랜 가르침처럼 세상의 모든 형상은 머물지 않는다. 2023년 봄, 동해안을 덮친 대형 산불은 강릉 경포호 인근의 작은 비구니 사찰을 흔적도 없이 태워버렸다. 법당과 요사채, 수십 년의 시간이 쌓인 수행 공간이 하룻밤 만에 사라졌다. 화마가 지나간 자리에 스님들에게 남은 것은 그날 입고 있던 승복 한 벌뿐이었다. 하지만 수행의 기억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강릉 인월사는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된 건축이다.

재건은 곧바로 시작됐다. 전국의 스님과 불자들이 십시일반 기부에 동참하며 새 절을 짓기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 설계는 윤경식 건축가가 맡았다. 자연 친화적 설계와 종교·명상 공간 작업을 꾸준히 이어오며 전통과 현대의 접점을 탐구해 온 건축가다. 2024년 착공해 2026년 2월 완공된 인월사 담마센터는 같은 해 3월 제53회 세계건축상(WA Awards) 대상을 받았다.
세계건축상은 2006년 설립된 세계건축커뮤니티(World Architecture Community)가 주관하는 국제 건축상이다. 설계의 독창성과 창의성을 기준으로 명예회원과 역대 수상자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이 투표를 통해 수상작을 선발한다.

사찰의 이름인 인월(印月)은 경포호 위에 비친 달을 뜻한다. 건축가는 이 이름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불교 경전의 기록을 설계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경전은 부처의 눈썹을 짙은 회색빛의 초승달 형상으로 묘사한다. 재건된 사찰의 형태 역시 그 곡선에서 출발했다. 산불이 휩쓸고 간 대지는 길고 좁았다. 법당과 명상센터를 사각형 건물로 나눠 배치하기엔 제약이 있었다. 건축가는 두 기능을 하나의 곡선형 건물 안에 통합하고 중앙에 로비를 배치하는 방식을 택했다. 직선 대신 곡면을 선택하면서 공간의 긴장이 완화됐고, 건물은 주변의 낮은 산세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지붕의 이중 곡선 박공은 인근 산의 능선과 건물의 두 기능을 동시에 반영한다.

건물을 감싸는 긴 외벽은 이 프로젝트의 핵심 장치다. 건축가는 이를 ‘인드라 월(Indra-wall)’이라 이름 붙였다. 불교에서 인드라망(Indra’s Net)은 거대한 그물과 그 매듭마다 달린 무수한 보석 구슬로, 각각의 구슬이 서로를 비추며 세상의 진리를 드러낸다는 화엄 사상의 상징이다. 외벽은 다채로운 색의 디자인 블록과 그 사이 빈 공간으로 구성된다. 블록은 서로 다른 존재를, 보이드는 그 사이의 연결과 여백을 뜻한다. 이 벽은 시간에 따라 다른 얼굴을 보인다. 낮에는 블록 사이로 빛이 내부로 스며들며 법당과 명상 공간에 유동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밤에는 내부의 간접조명이 외부로 흘러나오며 건물 전체가 빛을 드러낸다. 안과 밖의 경계는 흐려지고, 존재들이 서로를 비춘다는 인드라망의 철학이 빛의 방식으로 구현된다.

사찰 경내로 진입하기 전, 방문자는 앞마당의 반사 연못을 마주한다. ‘업경대의 거울(Mirror of Karma)’이라 불리는 이 연못은 자신이 지은 업보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불교적 의미를 담고 있다. 수면에 자신의 모습이 비치는 순간, 방문자는 성찰의 문턱을 넘어 경내로 들어선다. 외장은 노출 콘크리트와 투명 복층 유리, 디자인 블록, 아연을 사용했다.


내부는 수행 공간에 필요한 기능과 분위기를 함께 고려했다. 메탈릭 에폭시 바닥과 페이퍼 튜브 음향 패널로 마감해 단단한 물성과 가벼운 질감이 공존한다. 로비와 명상센터 천장에 설치된 페이퍼 튜브 음향 패널은 소음을 흡수한다. 동시에 시각적으로 은하계를 연상시키며, 불교의 연기법(緣起法)을 떠올리게 한다. 곡선을 따라 이동하고, 빛이 스며드는 공간을 지나, 그 천장 아래 머무르는 경험 속에서 이곳은 단순히 바라보는 건축이 아니라 머무르고 사유하는 공간이 된다.

전통 사찰을 재현하는 대신 현대의 재료와 기술로 재해석한 인월사. 익숙한 기와와 단청 대신 노출 콘크리트와 유리가 전면에 드러나는 건물은 기존의 형식에서 벗어난 만큼 다소 낯선 인상을 준다. 하지만 설계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이 건축의 언어가 처음부터 불교의 개념 위에서 출발했음을 확인하게 된다. 불교는 시대와 환경에 따라 그 본질을 다양한 방식으로 전해온 종교다. 모든 형상은 머물지 않는다. 사찰의 외형이 달라진다고 해서 그 안의 철학까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인월사는 형태가 사라진 자리에 무엇이 남아야 하는지를 건축으로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