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우디의 카사 바트요를 읽는 세 가지 포인트
가우디 사망 100주년, 카사 바트요에 현대미술 갤러리가 들어서다
2026년 1월 31일, 수십 년간 닫혀 있던 카사 바트요 2층 공간이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 카사 바트요 컨템포러리다. 이 공간을 어떻게 봐야 할까. 세 가지 포인트로 짚어본다.


2026년은 바르셀로나에게 특별한 해다.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가 세상을 떠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자, 도시가 유네스코 세계 건축 수도로 선정된 해다. 카탈루냐 정부와 스페인 정부는 공동으로 ‘가우디 이어 2026’을 선포했고, 도시 전체가 그의 유산을 새롭게 조명하는 한 해를 보내고 있다. 그 중심에는 파세이그 데 그라시아(Passeig de Gràcia) 43번지의 카사 바트요(Casa Batlló)가 있다. 1904년부터 1906년까지 가우디가 리노베이션한 이 건물은 물고기 비늘을 닮은 모자이크 파사드와 용의 등처럼 굽은 지붕으로 유명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지금은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랜드마크이자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2026년 1월 31일, 수십 년간 닫혀 있던 2층 공간이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 카사 바트요 컨템포러리(Casa Batlló Contemporary)다. 이 공간을 어떻게 봐야 할까. 세 가지 포인트로 짚어본다.
가우디의 공간에 새로움을 더하는 법

설계는 바르셀로나 건축 스튜디오 메수라(Mesura)가 맡았다. 메수라는 2010년 설립된 스튜디오로, 카탈루냐 지역의 역사적 건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이어온 곳이다. 19세기 건물의 돌 파편을 재활용해 완성한 바르셀로나 이솝(Aesop) 매장으로 유럽 건축·인테리어 신에서 주목받은 바 있다. 메수라에게 이번 의뢰는 꿈이자 도전이었다. 가우디의 건물에 손을 댄다는 것, 그 자체가 막대한 책임이었다. 스튜디오가 택한 원칙은 모방이 아닌 대화였다. 가우디의 색채와 형태를 존중하되, 현재의 방식으로 새로운 것을 더하는 것.
메수라의 공동 창립자 카를로스 디마스(Carlos Dimas)는 가우디의 것을 그대로 두되, 그 옆에 현재의 것을 더하는 방식을 택했다고 말한다. 메수라는 카사 바트요 팀과 함께 건물 곳곳을 꼼꼼히 살폈고, 수석 건축가 사비에르 비야누에바(Xavier Villanueva)가 이끄는 복원 팀이 목공예와 스테인드글라스를 원형 그대로 살려냈다. 특히 2층 공간은 오랜 시간 보존 작업실로만 쓰이며 외부에 전혀 공개되지 않았던 곳이다. 230㎡의 이 공간이 처음으로 세상에 열리는 순간, 메수라는 기존의 것을 걷어내는 대신 새로운 무언가를 더하는 방식을 택했다.
천장에 새긴 지중해의 물결

공간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건 천장이다. 잔잔한 호수에 물방울이 떨어졌을 때 퍼지는 동심원의 물결을 모티프로 한 곡면 금속 천장이 공간 전체를 감싸고 있다. 메수라는 이 천장을 완성하기 위해 자동차 산업에서 쓰이는 로봇 압축 기술을 처음으로 인테리어에 적용했다. 금속 전문 스튜디오 옥시도 스튜디오(Oxido Studio)와 협업해 로봇이 금속 시트를 압축하고 늘여 정밀한 곡면을 만들어냈다. 카를로스 디마스는 금속 시트에 이 물결형 입체 형태를 더하면 표면이 구조적 강도를 얻어 무거운 보조 구조물 없이 천장이 스스로 지지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가우디가 자연의 형태에서 구조의 원리를 끌어낸 방식과 닮아있다. 바닥은 카사 바트요 파사드 모자이크 타일의 초록빛을 담은 그린 마이크로시멘트로 완성됐다. 공간 전체의 색채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원형 목공예와 스테인드글라스가 살아있는 벽면, 물결치는 금속 천장, 파사드의 색을 품은 바닥. 서로 다른 시간대가 한 공간 안에 나란히 놓여, 가우디의 흔적과 지금의 것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가우디의 유산이 현재로 이어지는 방식

카사 바트요 컨템포러리는 연간 두 차례 전시를 개최하는 영구 갤러리로 운영된다. 개관 전시는 런던 아트 스튜디오 유나이티드 비주얼 아티스츠(United Visual Artists, 이하 UVA)가 맡았다. 2003년 매트 클라크(Matt Clark)가 설립한 UVA는 빛·사운드·움직임으로 시간과 지각의 경계를 탐구하는 작업으로 알려진 곳으로, 마시브 어택(Massive Attack)·제임스 블레이크(James Blake) 등과의 협업으로도 주목받았다. 개관 전시 ‘비욘드 더 파사드(Beyond the Façade)’는 13세기 마요르카 출신 철학자 라몬 류이(Ramon Llull)의 사유 체계에서 영감을 받아 생명의 순환을 빛과 움직임으로 풀어낸 몰입형 설치 작업이다. 매트 클라크는 같은 날 카사 바트요 파사드에 선보인 프로젝션 맵핑 ‘히든 오더(Hidden Order)’와 하나의 흐름으로 이 전시를 구성했다. 파사드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건물 안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수십 년간 닫혀 있던 공간이 처음 문을 여는 순간, 카사 바트요의 유산은 과거의 기념물이 아닌 연간 두 차례 전시를 개최하는 현재 진행형의 문화 플랫폼으로 다시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