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 100주년, 베르너 팬톤을 다시 읽는 시간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에서 만나는 팬톤 아카이브
올해는 덴마크 디자이너 베르너 팬톤(Verner Panton)의 탄생 100주년이다. 이를 기념해 독일 바일 암 라인에 위치한 비트라 샤우데포(Vitra Schaudepot)에서는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이 기획한 대규모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올해는 덴마크 디자이너 베르너 팬톤(Verner Panton)의 탄생 100주년이다. 이를 기념해 독일 바일 암 라인에 위치한 비트라 샤우데포(Vitra Schaudepot)에서는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이 기획한 대규모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베르너 팬톤: 형태, 색채, 공간(Verner Panton: Form, Colour, Space)〉은 팬톤의 가구와 조명, 텍스타일, 실내 디자인을 폭넓게 아우르며, 형태와 색채, 공간을 하나의 경험으로 확장한 그의 디자인 세계를 총체적으로 살핀다.

색채 혁명가의 탄생
1926년 덴마크 퓐섬 감토프테에서 태어난 베르너 팬톤은 오덴세 기술학교를 거쳐 코펜하겐 왕립예술아카데미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이후 1950년부터 1952년까지 덴마크 디자인의 거장 아르네 야콥센(Arne Jacobsen)의 건축 사무소에서 일하며 실무 경험을 쌓았다. 야콥센이 정제된 조형과 기능적 아름다움으로 덴마크 모더니즘을 대표했다면, 팬톤은 그 전통 안에서 출발해 가장 대담하게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 디자이너였다. 그는 기능과 구조의 합리성을 이해하면서도, 색채와 패턴, 빛과 신소재가 인간의 감각과 공간 경험에 미치는 영향을 집요하게 탐구했다.

팬톤이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계기는 1958년, 그의 부모가 운영하던 여인숙의 확장 및 리디자인 프로젝트였다. 그는 공간을 여러 톤의 붉은색으로 채우고, 여기에 어울리는 원뿔 형태의 ‘콘 체어(Cone Chair)’를 디자인했다. 좌석과 등받이, 팔걸이가 하나의 조각적 형태로 이어지는 이 의자는 당시의 가구 문법에서 벗어난 대담한 오브제였다. 팬톤의 대표작이자 20세기 디자인의 아이콘, ‘팬톤 체어(Panton Chair) 역시 기술적 난제를 해결한 결과물이자 플라스틱 가구의 가능성을 새롭게 증명한 작품이다. 합성 소재로 만들어진, 뒷다리 없는 의자를 통해 의자의 구조를 단순화하면서도 인체를 감싸는 유기적 형태를 구현했다.

몰입적 경험을 극대화한 디자인
팬톤의 실험은 가구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는 접이식 주택, 종이 주택, 플라스틱 주택 등 미래의 생활 방식을 상상하는 건축적 제안을 이어갔고, 조명과 텍스타일, 패턴 디자인까지 작업 영역을 넓혔다. 팬톤에게 가구는 독립된 제품이라기보다 공간 전체의 분위기와 감각을 구성하는 요소였다. 의자와 조명, 벽지와 카펫은 각각의 오브제로 존재하는 대신, 연속적인 환경을 이루는 장치로 작용했다.
팬톤의 디자인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키워드는 색채다. 그는 색을 단순한 장식이나 표면 효과로 여기지 않았다. 색채는 공간의 온도와 분위기를 바꾸고, 사용자의 감정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적극적인 디자인 요소였다. 선명한 원색,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컬러 스케일, 빛과 패턴의 조합은 팬톤이 즐겨 사용한 언어였다. “자신이 좋아하는 색깔의 의자에서 더 편안한 휴식을 얻을 수 있다”는 그의 말처럼, 팬톤에게 색은 심리적 경험과도 깊이 연결되어 있었다.

이러한 생각은 1960년대와 1970년대 그의 대형 인테리어 프로젝트에서 더욱 과감하게 펼쳐졌다. 1968년과 1970년의 ‘비지오나(Visiona)’ 전시, 1969년 함부르크 《데어 슈피겔(Der Spiegel)》 출판사 인테리어, 1971년 덴마크 오르후스의 바르나 레스토랑(Varna Restaurant)은 팬톤이 가구와 조명, 텍스타일, 색채를 결합해 다감각적 환경을 만든 대표 사례다.
특히 1970년 ‘비지오나 II(Visiona II)’를 위해 제작한 ‘판타지 랜드스케이프(Fantasy Landscape)’는 그의 상상력이 절정에 이른 작업으로 꼽힌다. 유기적인 곡선과 포화된 색채로 이루어진 이 공간은 집을 더 이상 방과 가구의 조합이 아니라, 몸으로 경험하는 조각적 풍경으로 바꾸어놓았다.


형태와 색채를 중심으로 한 팬톤 연대기
〈베르너 팬톤: 형태, 색채, 공간(Verner Panton: Form, Colour, Space)〉은 팬톤의 작업을 총체적으로 살펴보는 대규모 회고전으로, 팬톤 체어와 콘 체어, 플라워팟 램프(Flowerpot Lamp) 같은 대표작은 물론, 비전적인 생활 풍경, 드물게 공개된 가구와 건축 프로젝트까지 폭넓게 소개한다.

이번 전시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1970년 ‘판타지 랜드스케이프’의 워크인 재현 작품이다. 관람객은 팬톤이 구축한 조각적이고 색채로 충만한 세계 안으로 직접 들어가 그의 디자인을 눈으로 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몸으로 경험할 수 있다. 이는 팬톤이 평생 추구한 디자인의 방향과도 맞닿아 있다. 그에게 공간은 바라보는 대상이 아니라, 들어가고 머물고 움직이며 감각하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전시는 연대기적으로 구성해 팬톤이 자신의 디자인 아이디어를 얼마나 체계적으로 발전시켰는지 보여준다. 1950년대의 초기 인테리어 작업에서부터 그는 이미 스칸디나비아 디자인 전통을 벗어난 대담한 색채의 선언을 보여주었다. 이후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기업 및 개인 인테리어, 가구 시스템, 텍스타일, 조명으로 작업 영역을 넓혔고, 1980년대와 1990년대에도 색채와 유희적 디자인이라는 핵심 주제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켰다.


전시의 기반이 되는 자료 역시 방대하다.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의 베르너 팬톤 아카이브에는 가구, 프로토타입, 실험 작업, 모형뿐 아니라 4만 점 이상의 문서가 포함되어 있으며, 그중 약 2만 점은 도면과 드로잉이다. 이번 회고전은 이 자료를 바탕으로 팬톤의 전 생애에 걸친 작업을 소개하고, 그동안 충분히 조명되지 않았던 건축 프로젝트와 디자인 과정까지 새롭게 드러낸다.

베르너 팬톤은 미래를 낙관한 디자이너였다. 그는 새로운 소재와 기술이 우리의 삶을 더 자유롭고, 즐겁고, 감각적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고 믿었다. 목재와 수공예를 중심으로 한 덴마크 모더니즘이 절제와 기능의 미학을 추구했다면, 팬톤은 그 질서 바깥에서 디자인이 만들 수 있는 또 다른 가능성을 탐구했다. 그의 세계에서 집은 휴식처이자 동시에 놀이와 상상, 감각적 자극이 공존하는 장소였다.
기능과 효율이 생활 공간의 중요한 기준이 된 지금, 베르너 팬톤은 다시 묻는다. 우리가 머무는 공간은 얼마나 감각적일 수 있는가. 그리고 디자인은 어떻게 삶을 더 유쾌하고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가.
<Verner Panton : Form, Colour, Space>
주소 Charles-Eames-Str. 2 D-79576 Weil am Rhein
기간 2026.05.23 ~ 2027.05.09
운영 시간 매일 10:00 ~ 18:00
웹사이트 design-museum.de
글 길보경 객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