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너머의 사물들,〈헬라 융게리우스: 속삭이는 사물들〉전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에서 헬라 융게리우스의 첫 대규모 회고전 〈헬라 융게리우스: 속삭이는 사물들〉이 열리고 있다.

헬라 융게리우스(Hella Jongerius)만큼 산업 디자인의 논리를 비판하면서도 그 안에서 능숙하게 작동해 온 디자이너도 드물 것이다. 재료의 진정성을 주장하면서 글로벌 기업의 의뢰를 받아온 이력, 신제품 경쟁을 비판하면서도 그 시장 안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이름. 이 모순이야말로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에서 열리는 그의 첫 대규모 회고전 〈헬라 융게리우스: 속삭이는 사물들(Hella Jongerius: Whispering Things)〉을 읽는 출발점이다.

전시는 400여 점의 작업과 아카이브 자료를 4개 장으로 구성한다. 2024년부터 비트라가 보관 중인 융게리우스 아카이브를 기반으로 하되 완성품보다 스케치, 실험 기록, 프로토타입을 전면에 내세운다. 회고전이 통상 완성된 서사를 봉합하는 형식이라면, 이번 전시는 오히려 과정의 균열을 열어 보인다. 첫 번째 장 ‘더티 핸드(Dirty Hands)’는 융게리우스가 ‘더러운 손’이라 부르는 방법론에서 출발한다. 목적을 설정하고 재료를 선택하는 대신 재료와 직접 맞닿으며 형태를 발견하는 방식이다. 1990년대 드로흐 디자인(Droog Design) 시기의 작업으로 소개된 이 접근은 당시 네덜란드 디자인 신이 개념적 명료함을 앞세우던 분위기에서 오히려 불확정성과 물질적 우연을 끌어안는 것이었다.

전시는 완성된 오브제보다 과정의 흔적, 손의 압력이 남긴 자국과 재료가 예상과 다르게 반응한 기록들을 전면에 배치해 디자인을 신체적 실천으로 재정의한다. 두 번째 장 ‘비즈니스 클래스(Business Class)’는 긴장감을 품은 공간이다. 여기서 기획이 다루는 것은 협업의 성과가 아니라 협업의 조건이다. 마하람(Maharam), 이케아, 캠퍼, 비트라, KLM 등 글로벌 기업과 진행한 프로젝트들을 결과물이 아닌 서신, 샘플, 협상의 흔적으로 제시하며 상업적 환경 안에서 재료의 진정성과 저작권, 생산 윤리를 어떻게 다뤄왔는지 묻는다. 융게리우스는 기업을 비판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는다. 그는 기업의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 더 인간적이고 책임감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교육하고 변화시키려 했고, 그 과정에서 디자이너의 책임과 개인적 의제를 끝까지 놓지 않으려 했다. 장 제목은 KLM 항공기 인테리어 프로젝트를 가리키는 동시에 기업 세계 전반을 향한 그의 태도를 압축한다.

세 번째 장 ‘감각하는 눈(Feeling Eye)’은 색과 직물 연구를 중심으로, 감각이 어떻게 하나의 인식론이 될 수 있는지 탐구한다. 융게리우스에게 색은 고정된 속성이 아니다. 같은 색도 옆에 놓인 재료, 들어오는 빛, 직조 구조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인다. 이 장은 그 사실을 논리로 설명하는 대신 직접 경험하게 한다. 직물 연구도 같은 맥락이다. 산업 생산이 반복과 균일함으로 직물을 다룬다면 융게리우스는 실의 조합과 직조 방식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전혀 다른 감각이 펼쳐진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색과 직물을 미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재료가 지닌 물리적 조건의 문제로 다루는 시선이 이 공간을 관통한다.

마지막 장 ‘우주적 사고(Cosmic Mind)’에서 전시는 인간 중심의 축을 밀어낸다. 앞선 세 장이 디자이너와 재료, 기업, 감각의 관계를 다뤘다면, 이 장은 인간과 비인간 존재 전체를 포괄하는 생태적 시선으로 확장한다. 팬데믹 이후 제작한 일련의 작업이 보여 주듯 이 전환은 갑작스럽지 않다. 위기의 시간이 인간 중심적 디자인의 전제를 흔들었고, 융게리우스는 그 흔들림을 작업 안으로 끌어들였다. 전시 제목 ‘속삭이는 사물들’은 여기서 비로소 실체를 얻는다. 사물은 배경이 아니라 행위자이며 우리에게 계속 말을 건다. 그의 작업이 시대를 초월해 지속적으로 효력을 발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그가 산업 시스템 외부에서 이상을 설파하는 대신 내부에 발을 두고 그 논리와 마찰해 왔기 때문이다. 전시는 그 마찰의 궤적을 30년에 걸쳐 추적한다. 회고전은 단순한 아카이브 전시를 넘어선다. 긴 여정 속에서 도출한 4개의 프레임워크는 디자이너의 실천을 완결된 유산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의 질문으로 길어 올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