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 사토가 만든 가장 넨도다운 순간들
새로운 시작을 앞둔 넨도의 대표작들 5
지난 6월 5일, 일본을 대표하는 디자인 스튜디오 넨도(Nendo)의 창립자 오키 사토(Oki Sato)가 대표직에서 물러난다고 발표했다. 물론 대표직에서 물러난다고 해서 넨도를 떠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앞으로도 창작 과정에 참여하며 디자이너로서의 역할에 더욱 집중할 예정이라고.

지난 6월 5일, 일본을 대표하는 디자인 스튜디오 넨도(Nendo)의 창립자 오키 사토(Oki Sato)가 대표직에서 물러난다고 발표했다. 경영은 오랫동안 함께해 온 아키히로 이토(Akihiro Ito)가 이어받아 넨도의 다음 챕터를 써 내려간다고 한다.

2002년 오키 사토를 비롯한 여섯 명의 학생이 작은 차고에서 시작한 넨도. 일본어로 ‘찰흙’을 뜻하는 이름처럼 정해진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제품, 가구, 조명, 건축, 공간, 전시, 브랜딩 등 다양한 분야를 유연하게 넘나든다. 특정 장르보다 아이디어를 우선하는 접근을 바탕으로 카펠리니, 루이 비통, 에르메스, 이세이 미야케 등 세계적인 브랜드와 협업하며 동시대 일본 디자인을 대표하는 스튜디오로 자리매김했다.

넨도의 디자인은 거창한 발상보다 일상 속 작은 발견에서 출발한다. 오키 사토는 반복되는 일상에서 무심코 지나치는 사물과 행동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그 안에서 발견한 작은 아이디어를 직관적이고 위트 있게 디자인으로 풀어낸다. 이러한 철학은 제품 하나에 머무르지 않고 공간과 건축, 전시까지 일관되게 이어지며, 현재는 수백 개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면서도 하나의 디자인 언어를 유지하는 넨도만의 작업 방식으로 발전했다.

물론 대표직에서 물러난다고 해서 넨도를 떠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앞으로도 창작 과정에 참여하며 디자이너로서의 역할에 더욱 집중할 예정이라고 한다. 새로운 리더십 아래 다음 챕터를 준비하는 지금, 지난 24년간 넨도가 선보인 가장 넨도다운 디자인 5가지를 함께 살펴보자.
라센(rassen, 2013)

일본 후쿠이현 오바마시의 전통 젓가락 제조업체 하시쿠라 마쓰칸(Hashikura Matsukan)과 협업한 프로젝트다. 오바마시는 400년 넘게 칠기 젓가락을 제작해 온 지역으로, ‘와카사누리(Wakasa-nuri)’ 젓가락은 일본에서 가장 견고하고 아름다운 칠기 젓가락으로 알려져 있다. 넨도는 이러한 전통 기술을 바탕으로 익숙한 젓가락의 형태를 새롭게 해석했다.

젓가락은 두 개가 한 쌍이라는 익숙한 고정관념을 뒤집은 프로젝트다. 라센 젓가락(Rassen Chopsticks)은 사용하지 않을 때 하나의 오브제로 결합되고, 식사할 때 비로소 두 개로 분리되는 구조를 갖는다. 두 젓가락은 나선형으로 맞물리며 하나의 조형적인 형태를 이루고, 사용 후에는 다시 결합해 보관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넨도는 전통 장인의 손기술과 여러 각도에서 재료를 정밀하게 가공하는 다축 CNC 기술을 결합해 독특한 나선형 구조를 구현했다. 전통 공예 기술을 현대적인 형태와 사용 경험으로 재해석한 이 프로젝트는, 평범한 사물에 작은 재미와 새로운 시각을 더하는 넨도의 디자인 철학을 잘 보여준다.
2020 도쿄 올림픽 성화대(Tokyo2020 Olympic Cauldron, 2021)

2021년 도쿄 올림픽 성화대는 넨도의 디자인 철학과 일본의 제조 기술이 집약된 프로젝트다. ‘모두가 태양 아래 모여 평등하게 에너지를 받는다’는 개념을 바탕으로 하나의 서사를 담은 오브제로 만들었다. 평소에는 완전한 구체의 형태를 유지하다가 성화 점화 순간 다섯 개의 패널이 꽃처럼 펼쳐지며 불꽃을 드러낸다. 폐막식에는 다시 하나의 구체로 닫히고, 패럴림픽 개막식에서 다시 피어나는 움직임을 통해 생명과 순환, 새로운 시작을 표현했다. 벚꽃이 피고 지는 과정과 사계절의 순환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일본 특유의 미의식을 현대적인 움직임으로 만들었다.


디자인 과정에서는 태양을 가장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총 85개의 시안을 검토했다고. 내열 유리 안에 불꽃을 가두는 방식부터 화염을 회전시켜 구체처럼 보이게 하는 아이디어까지 다양한 가능성을 실험했다. 그 결과로 올림픽 오륜을 상징하는 다섯 개의 패널이 맞물린 구형 구조를 완성했다.


성화대는 특수 프레스로 성형한 알루미늄 패널과 초정밀 기계 설계를 적용해 가장 좁은 부분에서도 3mm 이하의 오차로 부드럽게 개폐되도록 제작됐으며, 친환경 수소를 연료로 사용하는 성화 시스템과 불꽃의 움직임까지 세밀하게 설계했다. 조형성과 움직임, 첨단 엔지니어링, 장인정신을 하나의 프로젝트로 결합한 이 성화대는 넨도가 추구해온 디자인 철학과 일본 제조 기술의 정수를 상징하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캐비지 체어(Cabbage Chair, 2008)

캐비지 체어는 넨도를 세계적인 디자인 스튜디오로 알린 대표작이다. 도쿄 ‘21_21 DESIGN SIGHT’ 개관 1주년 기념 전시를 위해 이세이 미야케(Issey Miyake)와 협업한 프로젝트로, 플리츠 원단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대량으로 버려지는 종이 롤에서 출발했다. 이세이 미야케는 이 부산물로 가구를 만들어달라는 과제를 제안했고, 넨도는 종이를 한 겹씩 벗겨낼수록 의자가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구조로 위트있게 풀어냈다.


별도의 프레임이나 나사, 내부 구조 없이 종이 자체의 물성과 플리츠(Plitz) 구조가 만들어내는 탄성만으로 의자가 완성되는 구조다. 완성된 형태가 없고 사용자가 직접 종이를 펼쳐 의자를 완성하도록 설계한 점도 인상적이다. 생산과 운송 과정의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버려지는 재료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며, 넨도만의 위트와 디자인 철학을 담아냈다.


덴리역 광장 코푸펀(Tenri Station Plaza CoFuFun, 2017)

일본 나라현 덴리역 앞 광장 일대를 새롭게 조성한 프로젝트다. 약 7,700㎡ 규모의 광장에는 카페와 상점, 관광 안내소, 어린이 놀이 공간, 야외 공연장, 커뮤니티 공간 등을 배치해 지역 주민과 관광객 모두가 자유롭게 머물 수 있는 공공 공간을 제안했다. 프로젝트명 ‘코푸펀(CoFuFun)’ 역시 고분(Kofun)과 무심코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모습을 뜻하는 일본어 의성어 ‘후훈(Fufun)’을 결합한 이름이다. 여기에 협력(Cooperation), 공동체(Community), 즐거움(Fun)의 의미를 더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이고 즐기는 광장이 되기를 바라는 뜻을 담았다.



프로젝트의 출발점은 덴리 지역 곳곳에 자리한 일본 고대 무덤, 고분이었다. 넨도는 이 지역의 역사적 상징을 단순한 조형 요소로 차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고분의 완만한 곡선과 입체적인 형태를 광장 전체의 컨셉으로 확장했다. 원형 구조물은 공장에서 미리 제작한 콘크리트 부재를 현장에서 조립하는 프리캐스트 공법으로 제작했다. 동일한 금형을 반복 사용할 수 있어 시공 효율성과 경제성을 높였으며, 기둥 없이도 넓은 공간을 구현할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완성된 원형 구조물은 하나의 형태 안에서 다양한 기능을 수행한다. 계단과 벤치, 아이들을 위한 놀이 공간의 경계는 물론 카페와 무대의 지붕, 상품 진열대, 야간 조명으로도 활용된다. 이렇게 설계로 이용자들이 공간을 자유롭게 탐색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머물도록 유도했다. 넨도는 이를 ‘카페이면서 놀이터이고, 동시에 거대한 가구이기도 한 모호한 공간’으로 설명한다.

안내 표지와 같은 그래픽 시스템부터 가구까지 모두 고분의 완만한 곡선을 모티프로 디자인했다. 그리고 실내 공간에도 광장과 같은 재료와 색채를 사용하며 공간 전체의 통일감을 유지했다.
마이 풋볼 키트(my football kit, 2021)

축구공을 구하거나 관리하기 어려운 지역의 아이들도 자유롭게 축구를 즐길 수 있도록 개발한 프로젝트다. 넨도는 개발도상국에서 축구공 자체를 구하기 어려운 현실과 함께, 공기주입기 부족이나 내부 튜브 손상으로 공을 오래 유지하기 어렵다는 문제를 디자인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일본 전통 대나무 공의 구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공기를 넣지 않아도 일반 축구공과 비슷하게 사용감의 축구공을 만들었다.


축구공은 세 가지 부품, 총 54개의 모듈을 조립해서 완성할 수 있다. 내부 공기압 대신 표면 소재의 탄성을 활용해 형태와 반발력을 구현했으며, 재활용 폴리프로필렌과 탄성 합성수지를 사용해 맨발로 차도 안전하도록 설계했다. 맞물리는 구조 덕분에 경기 중 일부 부품이 빠져도 공 전체가 쉽게 분해되지 않으며, 손상된 부품만 교체하면 계속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또한 분리된 상태로 운송할 수 있어 배송 비용을 줄일 수 있으며, 다양한 색상의 부품을 조합해 아이들이 직접 자신만의 축구공을 완성하도록 했다. 조립 설명서는 언어에 관계없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림만으로 구성했으며, 포장 가방은 완성된 축구공을 메고 다닐 수 있는 가방으로도 활용된다. 접근성과 유지관리, 생산과 운송, 사용자 경험까지 제품의 전 과정을 함께 고민한 프로젝트로, 디자인으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를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