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펜하겐이 주목한 전시 시리즈, 브레드앤버터

브레드앤버터의 두 번째 에디션,〈Perfect Pair in Bathing〉

브레드앤버터는 한국인 디자이너 세 명이 유럽을 무대로 시작한 독립 전시 시리즈다. 두 개의 오브젝트를 한 쌍으로 선보이는 ‘퍼펙트 페어링’을 통해 식사와 목욕처럼 익숙한 일상 속 문화와 기억을 디자인으로 풀어낸다. 올해 코펜하겐에서 열린 두 번째 전시에서는 16명의 디자이너가 각자의 목욕 문화를 저마다 다른 오브젝트로 해석해 선보였다.

코펜하겐이 주목한 전시 시리즈, 브레드앤버터

밀라노가 세계 디자인 산업의 거대한 무대라면, 코펜하겐은 브랜드의 규모보다 오브젝트에 담긴 이야기와 제작 방식,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관계가 중요하게 작동해온 도시다. 올해로 13회를 맞이한 ‘3 Days of Design’은 역대 최다 방문객을 기록하며 성장했지만, 행사의 규모가 커질수록 독립 디자이너와 작은 스튜디오가 설 자리에 대한 고민도 커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운영진과 해외 디자인 매체들의 주목을 받은 전시가 있었으니, 바로 한국인 디자이너들이 기획한 브레드앤버터(Bread & Butter)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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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스틸 라이프, 〈Perfect Pair in Bathing〉, 2026.
(오른쪽) 포스터, 〈Perfect Pair in Bathing〉, 그래픽 디자인 곽은정(Eunjung Kwak), 2026.

브레드앤버터는 디자인 스튜디오 AE Office의 최희·김명년과 디자이너 정벼리가 함께 꾸리는 전시 시리즈다. 2025년 첫 에디션 〈Perfect Pair in Dining〉에 이어 올해 〈Perfect Pair in Bathing〉을 선보였다. 두 개의 오브젝트를 한 쌍으로 구성해 선보이는 ‘퍼펙트 페어링’이 전시의 핵심이다.

브레드앤버터의 시작과 의미

베를린과 로테르담을 각각 거점으로 유럽 디자인 신에서 활동해온 최희와 김명년, 정벼리는 서로를 전시에 초대하며 교류를 이어왔다. 여러 디자인 페어와 독립 전시를 경험하는 동안, 이들은 컬렉터블 디자인과 아트 퍼니처의 비슷한 형식이 반복되고 규모와 상업성이 앞서는 흐름에 피로를 느꼈다. 보다 일상에 가까운 방식으로 디자인을 보여줄 새로운 무대를 찾던 이들이 주목한 도시는 코펜하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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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김명년·정벼리·최희

의기투합한 세 사람은 주제보다 공간을 먼저 찾았다. 서점과 오디오 숍 등 여러 공간에 문을 두드린 끝에 오픈을 앞둔 레스토랑과 연결됐고, 그곳에서 자연스럽게 다이닝이라는 주제가 나왔다. 브레드앤버터라는 이름도 이 과정에서 탄생했다. 영어권에서 생계나 삶에 꼭 필요한 것을 뜻하는 동시에, 빵과 버터처럼 완벽한 한 쌍을 연상시키는 이 표현은 “너희 둘은 꼭 브레드 앤 버터 같다”는 말을 들은 데서 착안했다. 처음에는 첫 전시의 제목으로 생각했지만, 두 오브젝트를 한 쌍으로 선보이는 기획과 맞아떨어지면서 시리즈 전체의 이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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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전시 전경, 〈Perfect Pair in Dining〉 2025.
(오른쪽) 스틸 라이프, 〈Perfect Pair in Dining〉 2025.

그렇게 시작된 첫 번째 전시 〈Perfect Pair in Dining〉에는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과 재료를 다루는 12팀의 디자이너가 참여했다. 접시와 커틀러리, 소금과 후추 통처럼 식탁 위에서 자연스럽게 짝을 이루는 관계에서 출발해 기능적·개념적으로 서로를 보완하는 한 쌍의 오브젝트를 선보였다. 컵받침 없이는 홀로 설 수 없는 훈 리(Hun Lee)의 컵처럼 두 물건이 함께할 때 비로소 완성되는 작품들이 하나의 긴 식탁 위에 모였다. 작은 레스토랑에서 열린 이 전시는 〈Wallpaper*〉, 〈Archipanic〉, 〈Thisispaper〉 등에 소개되며 새로운 전시 시리즈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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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AE Office, ‘Union’, 〈Perfect Pair in Dining〉, 2025, 포세린, 프루트볼 365 × 365 × 90 mm, 촛대 155 × 155 × 60 mm, 미니 화병 45 × 45 × 37 mm.
(오른쪽) 훈 리(Hun Lee), ‘Poom’, 〈Perfect Pair in Dining〉, 2025, 포세린, 컵 75 × 75 × 130 mm, 소서 125 × 125 × 55 mm.

Perfect Pair in Bathing

지난 6월 코펜하겐에서 열린 두 번째 에디션 〈Perfect Pair in Bathing〉은 목욕을 둘러싼 서로 다른 문화와 개인의 기억을 한 쌍의 오브젝트로 풀어낸 전시였다. 덴마크, 핀란드, 한국, 일본, 캐나다, 영국에서 모인 16명의 디자이너가 각자의 문화적 배경과 일상적인 목욕 경험을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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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전경, 〈Perfect Pair in Bathing〉, Noura Residency, 2026.

“목욕은 그 어느 때보다 취약하고 적나라해지는 순간이면서,
동시에 지극히 사적이면서도 이상하게 공적이다.”

최희, AE Office

덴마크의 하버 배싱, 핀란드의 사우나, 한국의 찜질방, 일본의 온천처럼 목욕은 문화마다 다른 얼굴을 지닌다. 존 트리(John Tree)는 어린 시절 부모가 낮은 의자에 앉아 양동이로 자신을 씻겨주던 기억을 되살려, 뒤집으면 양동이가 되는 스툴 ‘Bucket Seat’를 만들었다. 와타루 구마노(Wataru Kumano)는 일본의 목욕 문화와 밀접한 편백나무로 목욕과 사우나를 위한 서로 다른 두 개의 스툴을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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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존 트리(John Tree), ‘Bucket Seat’, 〈Perfect Pair in Bathing〉, 2026, 3D 프린팅 플라스틱·소나무.
(오른쪽) 와타루 구마노(Wataru Kumano), ‘MAS WK Bath Stool’, 〈Perfect Pair in Bathing〉, 2026, 편백나무

서울 기반 디자인 컬렉티브 라지미디엄스몰(Large Medium Small)은 한국의 바가지에서 형태를 가져온 주조 알루미늄 작품 ‘BAAK-AJI SERIES’를 선보였다. 물을 끼얹는 도구이자 찜질방에서 간식을 담는 그릇이 되기도 하는 바가지의 이중적 쓰임을 한 쌍의 오브젝트로 풀어냈다. EOB의 ‘Lake Glass’에는 정벼리가 경험한 핀란드 호숫가의 여름 사우나에 대한 기억이 담겼다. 몰드 블로잉으로 만든 잔과 핸드 블로잉으로 완성한 굽을 결합했다. 목욕이라는 주제는 이처럼 디자이너가 자라온 문화와 개인적인 경험을 거치며 서로 다른 형태와 기능으로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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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Large Medium Small, ‘BAAK-AJI SERIES’, 〈Perfect Pair in Bathing〉, 2026, 주조 알루미늄.
(오른쪽) EOB, ‘Lake Glass’, 〈Perfect Pair in Bathing〉, 2026, 유리.

첫 에디션보다 국제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디자이너들의 참여가 늘어난 점도 눈에 띈다. 아르텍의 디자인 디렉터를 지낸 빌레 코코넨(Ville Kokkonen)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브레드앤버터는 유명 디자이너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서로 다른 문화와 세대의 디자이너가 같은 무게로 만나는 전시를 만들고자 했다. 또한 유럽을 무대로 한국인 기획자들이 주도한 독립 전시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초대를 기다리기보다 직접 디자이너들을 연결하고 국제적인 관계를 만들어가는 시도였기 때문이다.

“유명 디자이너의 이름을 앞세워 전시를 알리기보다는,
여러 디자이너가 하나의 주제 아래 함께 만든 독립 전시로 기억되기를 바랐습니다.”

정벼리, EOB

이번에는 전시 장소가 두 곳이었다는 점도 특이하다. 도심에 위치한 노우라 레지던시(Noura Residency)에서는 16명의 디자이너가 완성한 오브젝트로 전시장을 목욕 공간처럼 꾸몄다. 또 다른 전시는 코펜하겐 노르하운(Nordhavn)의 바데초네 산카이(Badezone Sandkaj)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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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전경, 〈Perfect Pair in Bathing〉, Badezone Sandkaj, 2026.

산카이는 공식 해수욕 구역으로, 시민들의 하버 배싱(harbour bathing)이 이어지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오브젝트와 함께 리서치와 실험, 스케치 등 작품이 완성되기까지의 디자인 과정을 공개했다. 실제로 사람들이 물에 몸을 담그는 장소에서 작업 과정을 공개해, 목욕이라는 주제가 전시장 안에 머무르지 않고 코펜하겐의 일상적인 풍경 속으로 이어진 점이 특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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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마리아 브룬(Maria Bruun), ‘Tearful Waters – Glorified Pitcher and Washcloth’, 〈Perfect Pair in Bathing〉, 2026, 유리·등나무·면, 협업 마리 홀스트(Marie Holst).
(오른쪽) 와타루 구마노(Wataru Kumano), ‘Sauna stool’, 〈Perfect Pair in Bathing〉, 2026, 편백나무.

디자이너와 기획자 사이

서울의 디자인 오피스 SWNA에서 동료로 만난 최희와 김명년은 퇴사 후 함께 AE Office를 차렸다. 스튜디오를 한곳에 고정하기보다 여러 지역을 이동하며 현지의 문화와 제작 방식을 관찰하고 이를 디자인으로 풀어내는 것이 이들의 출발점이었다. 제주에서는 옹기 장인과 협업해 물허벅의 주둥이 형태를 활용한 촛대를 만들었고, 베를린으로 옮긴 뒤에는 유럽산 코르크로 제주 돌담을 재해석한 ‘DOL’(2023) 시리즈를 만들어 밀라노 알코바(Alcova)에 출품했다. 장소를 옮겨 다니며 그곳의 문화를 새로운 재료로 번역하는 태도는 지금도 이들의 작업을 관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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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E Office, ‘DOL’, 2023, 블랙 익스팬디드 코르크, 350 × 350 × 400 mm.

로테르담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정벼리는 헤이그 왕립예술학교와 디자인 아카데미 아인트호벤에서 건축·가구 디자인과 컨텍스추얼 디자인을 공부하며, 기능과 형태에 머물던 관심을 감각과 기억, 사회·문화·환경적 맥락으로 넓혔다. 지금은 디자인 스튜디오 EOB에서 가구와 조명, 오브젝트, 공간을 다루는 한편 전시 기획자로도 활동한다. 2024년 더치 디자인 위크에서 〈In Search Of〉를 기획하며, 사람과 작업, 공간 사이의 관계를 만드는 일로 활동 영역을 확장했다.

세 사람은 자신들의 협업 관계를 농담처럼 ‘삼권분립’이라고 표현한다. 정확히 업무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참여 디자이너 섭외는 정벼리와 최희가 함께 맡고, 최희는 아이디어와 공간 연출을, 정벼리는 디자이너와의 소통과 기획안 검토를, 김명년은 기술적 실행과 운영·아카이빙을 주로 담당한다. 서로의 아이디어에 무조건 동의하기보다 각자의 관점에서 질문하고 솔직하게 의견을 주고받으며, 중요한 결정은 충분한 논의와 합의를 거쳐 함께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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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OB

코펜하겐에서 서울로

브레드앤버터의 다음 목적지는 서울이다. 오는 11월 21일부터 29일까지 미래빌딩 3층에서 ‘Sleeping’을 주제로 새로운 전시를 선보인다. 수면은 식사와 목욕에 이어 누구나 매일 반복하는 또 하나의 행위다. 이번에도 세계 각국의 디자이너가 참여해 각자의 문화와 경험을 한 쌍의 오브젝트로 풀어낼 예정이다. 서울 전시는 해외 디자이너의 작품을 국내에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디자이너와 브랜드, 제작사를 연결해 실제 협업과 대화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세 사람은 전시가 거듭될 때마다 완성된 작품뿐 아니라 디자이너의 리서치와 제작 과정, 그 안에 담긴 이야기까지 기록하고 있다. 브레드앤버터는 도시를 옮겨 다니며 전시를 이어가는 동시에 서로 다른 문화권의 일상과 오브젝트를 모은 하나의 아카이브를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해외 통신원 장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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