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공이 될 수 있는 모든 것, 12 펜타곤스
축구공.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전형적인 제품 중 하나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익숙한 물건을 끝없이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곳이 있다. 존폴 휘틀리의 축구공 디자인 스튜디오 12 펜타곤스다.

축구공.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전형적인 제품 중 하나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익숙한 물건을 끝없이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곳이 있다. 존폴 휘틀리의 축구공 디자인 스튜디오 12 펜타곤스다. 스타트업 창업가였던 휘틀리는 팬데믹 시기 가벼운 마음으로 공을 만들었다. 첫 결과물은 엉망이었지만 재미가 붙어 계속 만들었고, 이는 어느새 축구공을 향한 집착이자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처음부터 브랜드를 만들 생각은 아니었다. 휘틀리는 자신의 소셜 미디어 계정에 아이디어부터 재료, 봉제, 시행착오까지 제작 과정을 담백하게 공개했다. 그런데 이 영상들이 첫해에만 누적 조회 수 1억 회를 넘길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공을 판매해 달라는 팔로워들의 요청도 이어졌다. 취미로 시작한 축구공 만들기가 실제 제품으로 이어진 계기다.
그렇다면 수많은 실험작이 어떻게 판매 제품이 될까? 그 힌트는 휘틀리의 실험실 ‘랩’에 있다. 이곳에는 패널을 232개까지 늘린 ‘232 패널 볼’, 반대로 단 하나의 패널로 구체를 만든 ‘원 패널 볼’, 마름모꼴 패널 30개로 큐브가 반복되는 듯한 구체를 만든 ‘큐브 볼’, 테트리스 블록 형태의 패널을 조합한 ‘테트리스 볼’ 등 수십 종의 실험작이 아카이빙돼 있다.

이 가운데 반응이 좋은 디자인은 실제 제품으로 발전한다. 가죽 패널 92개를 손바느질해 만든 첫 제품 ‘더 오리지널 92’, 1990년대 축구 게임의 로우 폴리곤 그래픽을 180개의 패널 구조로 구현한 ‘32 비트 메시’, 동일한 J자형 패널 8개가 나선형으로 휘감기며 구체를 이루는 ‘스파이럴 볼’을 발전시킨 ‘J-스워브 클래식’ 등이 대표적이다.


실험은 다양한 브랜드와의 협업으로도 이어졌다. 버버리와는 브랜드를 상징하는 체크무늬가 봉제선을 넘어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24개의 패널을 설계했고, 플레이스테이션과의 협업에서는 듀얼센스 컨트롤러의 버튼과 표면 질감을 축구공 구조로 옮겼다. 단순히 로고나 그래픽을 입히는 대신 각 브랜드의 특징을 축구공 구조로 번역한 것이다.
12 펜타곤스는 앞으로도 축구공을 중심으로 실험을 이어가는 한편, 같은 접근법을 다른 제품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휘틀리는 “앞으로의 모든 시도도 축구와 연결될 것이다. 독특한 구조, 조금은 터무니없고 비효율적이며, 원래는 존재하지 않았어야 할 것 같은 물건들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Interview
존폴 휘틀리 12 펜타곤스 대표

새로운 축구공에 대한 아이디어는 주로 어디에서 얻나?
어디에서나 얻는다. 요즘에는 작업 영상에 아이디어와 제안을 남기는 사람들에게서도 많은 힌트를 얻는다. 축구와 전혀 상관없는 분야에서 아이디어가 시작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축구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당신 영상은 계속 보게 된다”는 댓글도 자주 달린다. 내가 참 좋아하는 반응이다. 내 작업에는 축구뿐 아니라 디자인과 약간의 수학이 겹쳐지는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배들리 드로운 볼’은 사람들이 기억에 의존해 그린 서툰 축구공을 실제 제품으로 만든다는 발상이 흥미롭다. 어떻게 시작한 프로젝트였나?
새로운 공에 대한 아이디어를 설명하려면 스케치를 해야 하는데, 나는 축구공을 정말 못 그린다. 비율도 형태도 제대로 그리기 어렵다. 그래서 차라리 이 약점을 이용해 일부러 서툴게 그린 것처럼 보이는 축구공을 만들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길고 복잡한 프로젝트가 됐다. 첫 번째 버전은 손으로 꿰매 만들었는데 손으로 그린 공이 아니라 그냥 일그러진 공처럼 보였다. 두 번째는 아주 얇은 패널로 펜 선을 표현하려 했는데, 만들기는 까다롭고 결과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영상을 보는 사람들에게 ‘못 그린 축구공’을 직접 그려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사람들이 축구공을 그릴 때 반복해서 저지르는 실수를 모으면 ‘못 그린 축구공다움’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5000장이 넘는 그림이 모였다. 지금도 가장 아끼는 컬렉션 중 하나다. 제품과 패키지, 마케팅 곳곳에 이 그림들을 숨겨두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수집할 생각이다. 이 그림들을 분석해 평균적인 ‘못 그린 축구공’의 특징을 추려낸 뒤, 종이 같은 질감의 표면에 실제 펜으로 그린 듯한 선을 인쇄해 제품으로 완성했다. 공은 일부러 못생기게 디자인했고, 마케팅에서도 이 공이 얼마나 ‘못 그린 것처럼 보이는지’를 강조했다. 사실 출시 전에는 걱정도 많았다. 회사의 존속이 신제품 하나하나의 성패에 달려 있었으니까. 하지만 다행히 꽤 많은 사람이 이 못생김을 좋아해 줬다. 다행히 세상에는 이런 이상한 축구공에 기꺼이 몇백 달러를 쓰는 약간 엉뚱한 사람들이 딱 필요한 만큼 있는 것 같다.

지금까지 만든 축구공 가운데 가장 애착이 가는 것은 무엇인가? 반대로 가장 만들기 어려웠던 공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쉽게 답하지 못했을 것 같다. 그런데 최근 월드컵 기간에 4개 도시에서 전시를 열었는데, 작품을 돌려받는 과정에서 배송 상자 하나가 분실된 줄 알았던 적이 있다. 그 순간 ‘제발 그 공만은 분실된 상자 안에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바로 내가 처음 만든 축구공이었다. 오각형 12개를 엉성하게 꿰맨, 정말 형편없는 공이다. 객관적으로 가장 못 만든 공인데도 첫 작품이라는 이유만으로 가장 아끼는 공이 됐다. 가장 만들기 어려웠던 건, 곧 출시할 232개 패널로 이루어진 공이다. 아마 지금까지 양산된 축구공 중 가장 많은 패널이 들어간 공일 것이다. 비교적 초기에 만든 디자인인데, 전체 컬렉션을 보여주면 사람들이 가장 먼저 눈여겨보는 공 중 하나다. 실제로 보면 패널이 너무 많아 꽤 충격적이다. 나는 바로 그 점이 좋다. 애초에 존재하지 말았어야 할 것 같은, 비효율적이고 바보 같은 방식으로 만든 축구공이니까.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만져보고, 손에 쥐고, 직접 차보고 싶어지는 이상한 매력이 생긴다.

계속 새로운 공을 만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마 노력과 보상의 균형 때문인 것 같다. 손으로 축구공 하나를 만드는 일은 정말 고되다. 하나를 완성하는 데 몇 주가 걸리고, 제작 과정을 촬영하면 더 오래 걸리기도 한다. 하지만 끝에는 언제나 보상이 있다. 공을 완성하고 처음으로 바람을 넣은 뒤, 실제로 가지고 노는 순간의 만족감은 정말 특별하다. 그리고 그 공은 이후에도 계속 함께한다. 각각의 공은 내 삶의 한 시기를 기록하는 표식이 되기도 한다. 어떤 공을 집어 들면 ‘아, 이건 그때 만들었던 공이지’ 하고 당시의 기억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