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에서 아이콘으로, 나이키 문 슈 기획전 다시보기

나이키의 문 슈 기획전,〈Version 0: Prototype〉

1970년대 초 탄생한 나이키의 초기 러닝화 ‘문 슈’가 반세기 만에 다시 서울에 모습을 드러냈다. 〈Version 0: Prototype〉은 문 슈의 탄생 과정에 담긴 실험과 시행착오를 8명의 아티스트의 작업과 연결해 선보인 전시다. 오리지널 문 슈와 초기 아카이브부터 프로토타입과 완성작을 잇는 공간 구성까지, 전시의 주요 장면을 살펴봤다.

혁신에서 아이콘으로, 나이키 문 슈 기획전 다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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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 문 슈(Moon Shoe)의 오리지널 아카이브 피스. 출처 나이키 뉴스룸

최근 몇 년간 스니커 트렌드에서 눈에 띄는 점은 바로 ‘로우 프로파일(Low-profile)’의 부상이다. 두툼하고 볼륨감 있는 스니커와 달리, 얇고 평평한 밑창에 발을 따라 낮고 날렵하게 떨어지는 실루엣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트렌드는 돌고 돈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이키의 아카이브를 반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지금의 흐름과 묘하게 닮은 한 켤레를 발견할 수 있다. 1970년대 초 탄생한 ‘문 슈(Moon Shoe)’다. 오랫동안 아카이브 속에 남아 있던 문 슈는 지난해 자크뮈스(Jacquemus)와의 협업을 통해 런웨이에 다시 등장하며 새로운 세대와 마주했다.

문 슈의 탄생은 러너의 접지력을 개선하려는 빌 바워만의 고민에서 시작됐다. 나이키 공동 창립자이자 당시 오리건대학교 육상 코치였던 빌 바워만(Bill Bowerman)은 러너에게 더 나은 접지력을 제공할 방법을 고민하던 중 와플 기계의 격자무늬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직접 액체 우레탄을 붓고 여러 차례 실험한 끝에 와플 형태의 밑창을 만들었고, 1972년 미국 올림픽 선발전을 앞두고 이를 적용한 러닝화 프로토타입을 제작했다. 밑창이 남긴 흔적이 달에 남은 우주비행사의 발자국을 닮아 ‘문 슈’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후 이 실험은 1973년 오리건 와플과 1975년 와플 트레이너로 이어지며 나이키 러닝화 개발의 중요한 출발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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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제1 파워플랜트에서 열린 나이키의 문 슈 기획전 〈Version 0: Prototype〉 사진 나이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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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sion 0: Prototype〉 전시 전경 사진 나이키

반세기 전 하나의 프로토타입으로 시작된 문 슈를 다시 꺼내보는 자리가 최근 서울에서 마련됐다. 지난 9월 19일부터 21일까지 서울대학교 제1 파워플랜트에서 열린 나이키의 문 슈 기획전 〈Version 0: Prototype〉이다. 전시는 문 슈 자체를 새롭게 디자인하기보다, 그 탄생 과정에 있었던 실험과 시행착오를 오늘날의 창작 과정과 연결해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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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에 참여한 8인의 아티스트. 출처 나이키 홈페이지

전시에는 서로 다른 재료와 방식으로 작업해 온 8명의 아티스트가 참여했다. 재료와 제작 방식에 대한 실험을 바탕으로 가구와 오브제, 설치 작업을 선보이는 최성일, 먹과 광목, 실 등을 활용해 개인의 기억과 감정을 회화와 조각으로 풀어내는 한상아, 일상의 사물과 생명체에서 발견한 형태를 다양한 재료와 기법으로 조합하는 조각가 이현우가 이름을 올렸다. 동시대의 이미지를 수집하고 다시 그리는 방식으로 작업하는 노상호, 그래픽과 소재, 실루엣을 실험해 온 패션 디자이너 조계주, 손으로 직접 직조하는 과정과 시간에 주목하는 패션 브랜드 영앤생, 한국 전통 가구의 형태와 현대적인 소재를 결합하는 가구·오브제 디자이너 김현희, 식물과 꽃, 돌 등 자연에서 얻은 재료를 사용하는 아티스트 타임 닐라파나쿨(Thyme Neelaphanakul)까지 작업 영역도 접근 방식도 각자의 재료와 작업 방식을 바탕으로 뚜렷한 작업 세계를 구축해 온 창작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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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sion 0: Prototype〉 전시 전경 사진 나이키

이들은 문 슈의 형태를 새롭게 디자인하기보다 그 탄생 과정에 있었던 실험의 태도를 각자의 재료와 작업 방식으로 풀어냈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문 슈 자체를 새롭게 디자인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문 슈가 수많은 테스트와 시행착오를 거쳐 완성됐듯, 8명의 아티스트 역시 각자의 작업에서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결과물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을 전시 안에 함께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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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작과 그에 이르는 과정을 함께 보여주는 방식은 공간 구성에도 반영됐다. 전시는 프로토타입(Prototype)에서 완성된 결과물(Rendition)로 이어지는 흐름에 따라 1층과 2층을 나눠 구성했다. 먼저 1층 ‘Prototype’ 섹션에서는 완성된 결과물보다 그 이전의 과정에초점을 맞췄다. 아이디어의 출발점이 된 스케치부터 샘플, 재료 테스트와 여러 차례의 시행착오까지, 작품이 완성되기 전의 흔적을 한데 펼쳐 보였다. 관람객은 각각의 아티스트가 어디에서 작업을 시작해 어떤 과정을 거쳐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는지 차례로 따라갈 수 있도록 구성했다.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투명한 유리 바닥을 마주하게 된다. 그 위에는 1층에서 살펴본 실험을 거쳐 완성된 8점의 작품이 자리한다. 작품 앞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그에 해당하는 프로토타입과 제작 과정이 그대로 보인다. 완성작과 그 이전의 과정을 위아래로 나란히 배치한 것이다. 이러한 전시장 구성이 더욱 흥미롭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래층에서는 그 결과물을 미리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에서는 미래를 볼 수 없지만, 미래에서는 과거를 돌아볼 수 있듯이 말이다. 관람객은 제작 과정을 먼저 지나 완성된 작품을 마주한 뒤에야 자신이 지나온 과정을 다시 내려다보게 된다. 과거와 현재의 시간적 흐름을 수직적인 공간 구조로 풀어내며, 전시가 전하고자 한 메시지를 직관적으로 드러냈다.

8명의 아티스트가 선보인 작품 외에도 전시장 곳곳에서는 나이키의 과거를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아카이브를 만날 수 있었다. 1층 한쪽에는 오리지널 문 슈 아카이브 피스를 중심으로 와플 아웃솔에서 오리건 와플, 와플 트레이너 등으로 이어지는 나이키 풋웨어의 변화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설치물이 자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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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슈를 탄생시킨 빌 바워만의 작업실에서 영감을 얻은 ‘프로토타입 스튜디오’ 사진 나이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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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프로토타입 섹션의 중심에 전시된 나이키 문 슈 사진 나이키

또, 초기 나이키의 포스터와 그래픽, 당시 매거진에 실린 나이키의 모습 등 평소 쉽게 접하기 어려운 자료도 함께 만나볼 수 있었다. 하나의 프로토타입에서 시작된 러닝화의 변화와 함께, 초기 나이키가 어떤 철학과 문화를 바탕으로 브랜드의 정체성을 만들어왔는지를 보여주는 자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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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문 슈 아카이브를 중심으로 다양한 피스들을 만나볼 수 있다. 사진 나이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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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문 슈 아카이브를 중심으로 다양한 피스들을 만나볼 수 있다. 사진 나이키

이 밖에도 전시 기간에는 관람객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빌 바워만의 작업실에서 영감을 얻은 ‘프로토타입 스튜디오’를 비롯해 셀프 프린팅과 커스텀 스탬프, 참여 아티스트의 토크와 워크숍 등이 함께 마련됐다. 영앤생과 함께 손으로 티 코스터를 직조하고, 노상호의 ‘먹지 드로잉’ 방식으로 문 슈 이미지를 새롭게 그려보는 등 참여 작가의 작업 방식을 직접 경험하는 프로그램도 이어졌다.

평소 쉽게 접하기 어려운 나이키의 아카이브를 한자리에서 펼쳐 보이는 동시에, 이를 동시대 창작자들의 새로운 작업으로 연결했다는 점도 이번 전시에서 눈여겨볼 만한 부분이다. 과거의 기록을 꺼내 지금의 시선으로 다시 바라보는 나이키가 다음에는 어떤 이야기를 전시로 풀어낼지 기대하게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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