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돌체 비타를 다시 쓰다, 엑스페리멘털 로마

은행 건물에서 감각적인 부티크 호텔로

옛 은행을 개조한 호텔 ‘엑스페리멘털 로마’는 과거의 화려함과 현대적 미학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이탈리아의 역사와 1970년대의 유희적 감각을 재해석한 독창적인 환대 문화를 소개한다.

로마의 돌체 비타를 다시 쓰다, 엑스페리멘털 로마

1950~70년대의 글래머와 고대 로마의 장식, 현대적 인더스트리얼 감성이 교차하는 공간. 프랑스 디자이너 로돌프 파랑트(Rodolphe Parente)가 옛 은행 건물을 새롭게 탈바꿈시켜 완성된 호텔 ‘엑스페리멘털 로마’에서는 도시의 오래된 역사와 동시대적인 디자인 감각이 만나고 있다.

로마의 비아 베네토(Via Veneto)는 이탈리아의 전후 황금기를 상징하는 거리다. 페데리코 펠리니의 영화 ‘달콤한 인생(La Dolce Vita)’에 등장하며 더욱 유명해진 이곳은 아니타 엑베리와 마르첼로 마스트로야니 같은 스타들은 물론, 카메라를 든 파파라치와 사교계 인사들이 모여들던 곳이기도 하다. 화려한 밤의 문화와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교차했던 비아 베네토는 지금도 로마 특유의 글래머를 간직하고 있다. 2026년 10월 문을 연 ‘엑스페리멘털 로마’는 바로 이 역사적인 거리에서 과거의 화려함을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재현했다.

프랑스에서 출발한 호텔·레스토랑 그룹 ‘엑스페리멘털(Experimental)’이 선보이는 이 호텔은 비아 루도비시(Via Ludovisi) 46번지, 과거 은행으로 사용되던 건물을 새롭게 단장해 탄생했다. 스페인 계단과 가까우며, 총 82개의 객실과 스위트룸을 비롯해 레스토랑, 칵테일 바, 루프톱 수영장을 갖췄다. 중앙 유리 천장 아래 자리한 레스토랑에서는 셰프 조반니 파세리니(Giovanni Passerini)의 요리를 즐길 수 있으며, 루프톱에서는 콜로세움과 로마의 주요 명소를 감상할 수 있다. 숙박을 넘어 미식과 칵테일, 도시의 문화적 분위기를 함께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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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Giulio Ghirardi

프로젝트를 맡은 인테리어 디자이너이자 건축가 로돌프 파랑트는 도시가 가진 과거의 양식 그대를 재현하는 대신, 서로 다른 시대와 소재를 결합해 오늘날의 로마를 제안한다. 이탈리아의 역사적 장식미와 1970년대의 유희적인 감각, 컨템포러리 소재와 조형성을 한데 모았는데, 고급스러운 재료와 거친 질감, 따뜻한 색채와 차가운 금속, 전통적인 형태와 미래적인 표면이 공존하는 인테리어는 어쩌면 익숙한 로마의 이미지를 낯설어 보이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호텔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이탈리아 거장들의 건축과 조각에서 영감을 얻은 계단이 건물의 역사적 맥락을 환기시키며 하나의 조각 작품처럼 기능한다. 여기에 크롬 도금 튜브와 디스코를 연상시키는 장식, 반짝이는 루렉스 소재의 카펫이 더해져 1970년대 특유의 화려한 분위기를 불러낸다. 고전적인 건축 유산을 엄숙하게 보존하는 데 머물지 않고, 빛과 반사, 질감의 변화를 통해 보다 감각적이고 유희적인 공간으로 전환한 것이다.

파랑트가 선택한 소재의 대비는 호텔 전체 디자인을 관통하는 전략이다. 대리석의 묵직하고 고급스러운 질감은 접힌 스테인리스 스틸의 날카로운 표면과 만나고, 테라코타 계열의 따뜻한 흙빛은 빛을 반사하는 금속과 대조를 이룬다. 서로 다른 물성을 가진 재료를 함께 배치함으로써 각각의 특징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는 방식이다. 광택이 도는 표면은 빛을 받아 공간에 깊이를 더하고, 상대적으로 거칠거나 무광택인 소재는 시각적인 균형을 잡는다. 장식 요소를 무작정 더하기보다 재료 사이의 관계를 정교하게 조율해 공간의 개성을 만드는 방식이다.

객실과 스위트룸은 크게 연극 무대처럼 극적인 로마의 실내를 연상시키는 룸과 절제되고 미래적인 분위기의 룸,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 번째에서는 고대의 드레이퍼리를 떠올리게 하는 조형적 헤드보드, 빌라 메디치의 응접실에서 영감을 얻은 듯한 장식, 그리고 공간에 리듬을 더하는 컬러풀한 세면대, 촉각적 편안함은 두툼한 카펫이 담당한다.

두 번째 유형은 보다 절제되고 미래적인 분위기를 지향한다. 광물의 흔적을 연상시키는 표면 마감과 두 가지 색으로 구성된 래커 천장, 세로 홈이 있는 스테인리스 스틸 헤드보드가 공간을 구성한다. 앞선 유형이 색채와 장식의 풍성함을 강조한다면, 두번째는 형태와 재료의 표현력에 집중했다. 두 가지 객실 유형을 결정한 것은 대비를 통해 균형을 찾는다는 공통된 디자인 원칙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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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실 © Giulio Ghirardi

욕실에서도 소재 사이의 대비는 명확하게 드러난다. 따뜻한 목재와 차가운 석재, 자연스러운 질감과 맞춤형 패턴을 조합해 서로 다른 물성이 만들어내는 감각을 강조한다. 객실과 욕실, 공용 공간에 이르기까지 소재와 색채의 관계를 일관되게 다루면서도 각 공간의 분위기를 획일화하지 않은 점이 특징이다.

호텔의 또 다른 매력은 도심의 풍경을 실내 경험과 연결하는 루프톱이다. 수영장과 바가 자리한 옥상에 올라가면 주변 건축물들의 지붕과 역사적 기념물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실내에서 경험한 금속의 반사와 색채의 대비가 도시의 빛과 풍경으로 이어지는 경험이 기다린다. 과거 은행 건물의 구조를 바탕으로 로마의 역사와 현대적인 환대 문화를 연결한 이 프로젝트는 ‘엑스페리멘털’이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 중심의 호텔 경험을 보여준다.

로돌프 파랑트는 누구?

건축 인테리어와 가구, 제품디자인을 넘나들며 자신만의 공간 언어를 구축해온 프랑스 디자이너다. 2009년 파리에서 본인의 스튜디오인 ‘Rodolphe Parente Architecture & Design‘을 설립하기 전, 프랑스 인테리어 디자인의 거장 앙드레 푸트만(Andrée Putman)과 함께 일하며 경험을 쌓았다. 디종 국립미술학교(École Nationale des Beaux-Arts), 스트라스부르 장식미술학교(École Supérieure des Arts Décoratifs), 스위스 로잔의 ECAL에서 공부한 그는 인테리어부터 가구, 오브제 디자인까지 폭넓은 영역을 아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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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돌프 파랑트 사진 © Giulio Ghirardi

그가 이끄는 스튜디오는 주거 공간과 호텔, 레스토랑, 사무실을 비롯해 가구와 액세서리까지 다양한 규모와 성격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남프랑스의 호텔 르 프로방살(Le Provençal), 제네바의 롬바르 오디에(Lombard Odier) 은행 본사, 모나코의 대형 주거 공간 등 서로 다른 맥락의 프로젝트에서 장소의 특성과 사용자의 요구에 맞춰 고유한 분위기를 구축하는 것이 특징이다. 파랑트의 디자인을 형성하는 주요한 참조점은 1930년대 디자인에서 보여지는 혁신성, 1970년대의 글래머, 1980년대의 급진적 미학이라고 한다. 예상 밖의 조합과 유머를 통해 기존의 디자인 문법을 부드럽게 비틀고, 고급스러움 속에 가벼움과 호기심을 더하는 것이 그의 작업을 특징짓는 요소다.

엑스페리멘털 로마(Experimental Roma)

장소 Via Ludovisi, 46, 00187 Roma RM, Italie
홈페이지 experimentalrom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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